송대관 "시작했으니 완승해야지"

"하이고 말도 마소. 다씨는 헐일이 아니여 이것이. 그 많은 대사 외우려면 대그박에 쥐나부러. 천만금을 줘도 다시는 안혀. 하지만 이 작품은 이미 시작된 거 완승을 하겠다 이거여."

 

트로트계의 대부 송대관(65)은 익살스럽게 엄살을 피웠다.

 

그는 지난달 23일 시작한 SBS TV 주말극 '신기생뎐'을 통해 연기자의 재능을 과시하며 극 초반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신인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한 탓에 이렇다할 홍보도 못하고 출발한 이 드라마는 '의외의 캐스팅'인 송대관의 '예상치 못한 연기력'이 회자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주연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파급력이다.

 

지난 11일 남산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지나가던 중년의 남성들이 '송대관씨!'라며 스스럼없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임성한 작가 하나만 보고 출연을 한다고 했어요. 내가 '하늘이시여' 같은 드라마 좋아했거든. 임 작가는 스토리가 예측불허잖아요.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보게 되는 그런 작가니까 내 캐릭터도 충분히 살려주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중간에서 탤런트 이숙 씨가 내게 출연 의향을 묻더라고. 그래서 역할만 좋으면 하겠다고 답했죠."

 

그가 맡은 역은 50대 후반의 허랑방탕한 백수 서생강이다. 극의 무대가 되는 기생집 부용각의 더부살이로, 환갑이 내일모레지만 청바지에 청재킷, 반짝이 의상 등을 고수하는 그는 '3류 딴따라' 출신이다.

 

 

"작가가 예리하니까 역할에 충실하라고 날 내팽개쳤어요. 첫회부터 내복바람으로 나오고 무식함이 줄줄 흐르는 역할이지만 이런저런 것 마다하지 않고 하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팬티 바람으로 등장했잖아. 송대관이 망가지고 있으니 눈길을 끄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해요. 찍어놓은 게 많은데 눈물 콧물 쏟아내며 무식하게 신세 한탄하는 장면도 있어요. 작가가 된장을 제대로 푸는 것 같아요."

 

이런 역할을 송대관은 감초 연기 전문 배우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환갑 넘어 연기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의 연기에 시청자가 반응을 하다보니 분량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역할은 나 아니면 소화하기 힘들어요. 우리 고향 말(전라도)을 쓰고 코믹하잖아. 내가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투리를 서슴없이 쓰고 잘 웃기니까 이런 역할을 준 것 같아요. 사실 나한테 무슨 기업 회장이나 지식인 역할을 하라고 하면 어울리겠어요?(웃음) 서생강이는 원래 내 모습에서 조금 옆으로 옮겨간 캐릭터예요. 내가 평소 자유분방하고 사람들 잘 웃기거든."

 

시작은 2009년 KBS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였다. 그는 극중 음악계의 숨은 전설인 '용선생' 역을 맡아 연기에 데뷔했다. 그러나 몇회 출연하다 말았다.

 

"역할 콘셉트가 나랑 안 맞더라고요. 때마침 중국에 장기간 공연을 가야해서 드라마에서 빠져버렸죠. 사실 그동안 카메오나 시트콤 출연 제의는 많았어요. 하지만 정극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수 생활을 오래하니 연기도 해보라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지만 이왕 할거면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 그는 두 번째 작품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선보이며 오래 묵힌 끼를 과시하고 있다.

 

"내가 원래 코미디는 잘해요. 웃기는 데 날 따를 자가 없지. 공연을 다니면서 코미디를 한 가닥씩 넣으며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요. 작가가 그런 내 모습에 역할을 맞춰주는 면도 있죠. 내가 한 번에 팔굽혀펴기를 50개씩 하고 운동해서 가슴 근육이 튀어나온 것도 예능 프로에서 보여줬는데 그걸 봤는지 대본에 넣었더라고. 실제의 내게서 많은 것을 캐치해 서생강을 만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선을 그었다.

 

"지금도 난 내가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감히 연기라고 어떻게 말하나. 더구나 '내면의 연기'라느니 하는 건 꿈도 안 꾸고요. 그저 공연의 연장선에서 시청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이에요. 내 소임은 다 하자는 생각이죠. 물론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잔뜩 나 있어요."

 

하지만 그는 앞으로 6개월 정도 갈 이 작품 이후에는 다시는 연기를 안하겠다고 벌써 결정했다.

 

"대사 외우느라 죽겠어요. 남들보다 두세 배는 노력하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애드리브를 많이 하게돼요.(웃음) 그리고 이렇게 고생스러운 현장은 처음 봐요. 얼마 전에 눈 오는 날 부용각 앞에서 녹화를 했는데 온몸이 마비되는 줄 알았어요. 가수는 관객을 모아야 하니까 추우면 따뜻한 곳에서, 더우면 시원한 곳에서 공연을 하잖아요. 그런데 배우들은 아무리 추워도 연기해야하는 거야. 가수가 너무 행복한 거구나 느꼈어요. 대기하는 시간도 얼마나 긴지…. 돈도 안 돼요. 우리가 콘서트 한번 하면 3천만-4천만 원씩 받는데 이건 뭐 그 10분의 1도 못 받으며 온갖 고생 하잖아요. 예술하는 사람이 너무 돈 따지면 안 되니까 이번에는 그냥 하는데 이거 계속 하다가는 우리 식구들 다 굶어죽게 생겼어요.(웃음)"

 

그는 "다행히 지금은 (공연) 비수기인데 4-5월 되면 서생강이를 죽여달라고 할 판이다. 객사했다고 하고 난 공연장으로 도망갈지도 모른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라이벌인 태진아는 그의 연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로가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으니까 부러워하는 표정은 죽어도 안 짓지. 하지만 '저 형이 어찌될까' 궁금한 그 마음은 내가 읽죠. 말로는 '형 보는 재미로 주말드라마 보고 있다'고 하던데 내가 속으로 '속이 좀 시리지?' 했어요.(웃음)"

 

송대관은 "임 작가 작품이 원래 스타트가 산뜻하지는 않다. 그러나 가면서 점점 속도를 내는 작가이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분명 아주 높은 시청률을 장식하며 막을 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인터뷰 후 청계산으로 등산하러 갔다.

 

"내 별명이 청계산 다람쥐잖여. 산을 타야 건강이 유지돼. 대본 외워야하니까 언능 가 1시간 타고 올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