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초조대장경 판각 시작 1000돌이 되는 해이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맞아 고려 현종 2년(1011) 판각을 시작하여 1087년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목판대장경이다. 경판은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인쇄본만 현재 일본에 2500여 권, 국내에 300여 권이 전한다.
현대를 국력 중심의 '하드파워'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힘을 중시하는 '소프트파워'의 시대라 말한다. 문화는 오랜 기간에 걸친 지식, 기술, 경험의 축적이니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인간사이다. 그리고 모든 문화와 문명은 기록을 통해 널리 전파되고 후대에 전해지며 새롭게 창조된다. 따라서 인쇄술은 모든 문화와 문명의 모태라 할 수 있다. 하물며 시간적으로는 천여 년에, 공간적으로는 당시 아시아 대륙에 걸쳐 집적된 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대장경에 있어서이랴. 그래서 중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총력을 기울여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우리의 재조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만이 온전하게 전해진다. 당시 대장경은 세계 곳곳의 학문과 지식을 수집, 집약시켰기 때문에 국력의 상징이자 첨예한 선진문명의 지표이며 주도권에 대한 상징이었다. 비록 송(宋)나라가 가장 먼저 판각했지만, 고려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 지식의 보고(寶庫)로 재창조하였으니 당시 고려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선진국이었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은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문화의 유전자 '밈(meme)'을 지니고 있었음을 대장경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고려대장경을 만든 지적 유전자가 우리 몸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IT 강국이 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흔히 대장경을 호국불교의 대명사, 혹은 불교 경전의 집합체로서 불교 신자들에게만 의미있는 유산 정도로 생각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견해다. 대장경은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된 많은 성현들의 지혜가 한 데 모인 공동 창작물이자 기록의 집적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三藏(經·律·論)뿐 아니라 사전류, 목록류, 전기류, 도해류, 역사서, 여행기, 상소문, 비문, 시문, 심지어는 이교도의 성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근대에 편찬된 일본 대정신수대장경에는 景敎의 문헌(唐나라 때 장안에 정착했던 기독교인들의 성경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대장경의 정신은 당시의 중요한 기억들까지도 정리하여 후세에 전함을 기본으로 해 왔다.
이러한 대장경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았다. 이전에 인쇄된 그 많은 대장경을 모두 일본에 주어버렸고, 더욱 기막힌 일은 일본 사절들이 애원하여 얻어간 우리의 대장경을 방방곡곡의 사찰에 소중히 모셨던 데 비해, 조선의 유학자들은 나라를 오염시키는 쓰레기 정도로 여겼음을 조선왕조실록은 생생히 전한다. 그 결과 현재까지 전하는 대부분의 초조대장경이 일본에 있고, 연구결과 또한 역수입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세계기록문화유산입네,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입네 입으로만 되뇌인다. 오늘날에도 일부 몰지각한 성직자와 종교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
대장경 조조 시작 1000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물을 지니고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던 조선시대의 폐쇄적이고 무지몽매했던 유학자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도 늦지 않다. 대장경을 여러 차례 조성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찾는 국가 차원의 노력과 재창조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