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주 영화 기사는 정말 쓰기 싫었다. 기대작들의 무참한 배신 때문. 정확히 얘기하자면 '생각했던 것만큼'감동적이지 않거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전개가 문제였다. 아마도 영화 포스터를 보고 선입견이 생겨버린 탓이 아닐까. 감독이나 배우를 통해 이야기를 유추 하는 것은 실제 영화와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배급사들의 홍보물은 뒤통수를 치는 일이 허다하다. 그들에게는 관객 확보가 우선순위이고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영화와 관계성을 적어도 자극적인 문구와 사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어쨌든 이번 주 볼만한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릴 몇 편의 영화들을 뒤로하고 '블랙 스완'으로 낙점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기 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발레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 발레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 무용을 포기하라니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블랙 스완 '의 발레는 소재일 뿐 큰 덩어리는 인간의 내면을 다뤘기 때문이다.
니나(내털리 포트먼)는 소극적이고 연약한 성격의 뉴욕 시티 발레단의 발레리나다. 이런 그녀의 성격을 만든 것은 같이 살고 있는 엄마(바버라 허시)의 영향. 엄마는 니나를 항상 인형 다루 듯 한다. 니나는 어린 시절 시작한 발레 이외에 할 줄 하는 것이 없다. 발레 이외의 생활은 즐길 생각도 하지 않는 그녀. 그런데 어느 날,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했던 선배(위노나 라이더)가 은퇴를 선언하고 니나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발레단이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하고 단장(뱅상 카셀)은 백조와 흑조를 연기할 발레리나를 오디션으로 선발 하겠다고 선언한 것. 그러나 니나는 가장 뛰어난 기본기에도 불구하고 백조와 흑조 모두를 소화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탈락 위기에 처한다. 도발적이지 못한 탓에 흑조를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한 것. 하지만 니나와 단장 사이에 있었던 사고(?)가 계기가 되고 니나는 결국 주인공 자리를 거머쥔다. 문제는 신입단원 릴리(밀라 쿠니스)가 새로 들어오며 불거진다. 릴리는 정교하지 않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마성을 가진 것. 그런 그녀의 매력을 경계하면서도 릴리와 친구로서 가까워지기도 한다. 급기야 니나는 릴리에 대한 질투와 경계, 친구로서의 친숙함이 뒤섞이며 점점 두려움을 느끼고 그녀의 자아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종종 발레리나는 백조와 비교되곤 한다. 그들은 수면 위에서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수면 아래서는 쉴 새 없이 헤엄치고 있다. 발레가 아름다운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발레리나의 발을 볼 때면, 실제 고문 기구와 다름없는 토슈즈를 볼 때면 이런 예술 장르를 만들어낸 인간의 잔인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선택권 없이 한 길만을 가야하는 특정 직업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미 정해져 버린 발레리나의 삶은 애처롭게 느껴지기만 한다. 영화 속 니나의 정신분열은 자신에게서 흑조의 모습을 찾으려는 그녀의 노력이 빚어낸 슬픈 결과일 것이다. 끊임없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소름끼치고 등록 오싹한 자신을 찾는다. 이런 그녀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는 것이 카메라 기법이다. 16mm 소형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촬영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동시에 니나의 뒷모습을 쫒아가듯 거칠게 담아 긴박하고 불안한 정서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더불어 '블랙 스완'의 히로인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도 빼 놓을 수 없다. 불안정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 마치 그녀가 니나 인 듯한, 그녀의 실제 일인 것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다.
앞서 얘기 했듯이 이 영화는 발레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을 버려야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발레를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불안함과 잔인함, 수면 아래 백조의 다리 같은 이야기인 것. 불안한 그들의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면 영화가 아닌 작품으로 봐도 무관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