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이름은 있다. 땅의 이름, 즉, 지명(地名)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대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얽힌 애환(哀歡)이나 전설 또는 사연 등을 감안하여 작명(作名)된 것이다. 특히 풍수지리가 발달되었던 옛날에는 지명을 길흉화복(吉凶禍福)과도 연관시켰다. 그래서 지명은 그 땅에 대한 역사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몇 십호씩 군락을 이룬 자연마을이 많다. 마을 지명 역시 그 마을 역사의 요약본이기도 하다. 이런점에서 볼 때 사단법인 고창문화연구회가 고창의 지역마을을 재조명하는 책자를 발간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마을 지명에 대한 설명도 필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지명에 대한 연구가 왜 중요한가는 우리나라의 지명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면 더 생생한 느낌이 든다.
예를들어 서울에는 '미아동'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마아리 고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아동'은 한글로 써놓으면 아무 의미를 못느낀다. '미아'는 한문으로 쓰면 미아(彌阿)인데 그 동네에 미아사(彌阿寺)라는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미아동은 유행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서울 성북구에는 삼선동(三仙洞)이 있는데 원래 이 동네는 삼선평(三仙坪)이라는 들판이었는데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삼선평이란 지명은 이 마을 남쪽에 있는 옥녀봉 봉우리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神仙)과 함께 옥녀가 함께 놀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청담동(靑潭洞)은 옛날 이 일대에 맑은 연못이 있어서 처음에는 '청숫골'이라고 했다가 청담동이 된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는 불광동(佛光洞)이 있는데 이 지명 역시도 부처님의 서광이 비치는 불광사(佛光寺)라는 사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서울 마포구의 '난지도'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옛날에는 이 곳에 샛강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어우러지고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무성한데서 나온 지명이라고 한다.
전주 곳곳의 지명에도 이처럼 많은 사연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명을 한글로 쓰다보니 지명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를 느끼기도 힘들다. 반드시 한문을 함께 병기(倂記)해야 할 것이다.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