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 시대(?)에 맞춰 뱀파이어도 외계인도 있다고 가정하면, 사회는 어떻게 변화될까? 사실 수많은 뱀파이어, 외계인, 좀비 등을 주제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인류는 오래 전부터 그런 가정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쯤 되면 가정이라기 보단 걱정에 가깝다. 영화 혹은 드라마 속 뱀파이어, 외계인 등은 인간을 침략하거나 위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외계인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옛날 'E.T' 말고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2011년, 여기 새로운 침략자가 다시 등장했다. 새롭다기 보다는 늘 오던 외계인들인데 조금 다르다는 정도?. '인디펜던스 데이' '우주전쟁' 혹은 '디스트릭트 9'을 떠올리게 했던, 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월드 인베이젼'을 만나보자.
'월드 인베이전'은 이전의 많은 외계인들이 등장한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굳이 예를 든다면 올해 초 개봉한 '스카이라인'과 비슷한 분위기. 역시 내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스카이라인'을 만든 스트라우스 형제가 '월드 인베이전'의 특수효과 담당했다. 그 작품에서 도중 하차한 뒤 같은 컨셉트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선수를 친 것이다. '월드 인베이전' 제작진은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월드 인베이전'이 '스카이라인' 보다 나은 영화냐 아니냐일 뿐이다.
'월드 인베이전'의 소재는 1942년 미국 LA에서 있었던 UFO소동이다. 1942년 2월 25일 LA 상공에 UFO 나타났고 실제 100만여 명이 넘는 시민이 공습 사이렌 소리에 피신을 한다. UFO 목격의 역사 중에서 거대한 일화로 꼽히는 이 사건을 보고 제작진은 '현실적인 전쟁'이 가능하겠다고 느꼈을 정도라고. 마치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나라와 나라, 인종과 인종간의 전쟁처럼 군대가 적을 만난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2011년 지구에 거대한 유성떼가 떨어진다. 사상 최대의 유성쇼에 세계 각 도시는 들떠 있지만 이 사이 정체불명의 적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된다. LA주둔군 소속 내츠 하사(아론 에크하트)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지금껏 싸워본 적 없는 적들에 맞서 반격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헨드 헬드 기법'(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손으로 들고 촬영하는 기법)으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마치 이라크전 같은 전쟁을 뉴스로 보는 듯한 기분. 러닝타임 동안 끝없이 계속되는 전투신이나 그래픽 수준도 기대 이상이다. 결과적으로 비교 선상에 올려놓았던 '스카이라인' 보다는 조금 혹은 조금 더 낫다. 다만 외계인이라는 소재의 한계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외계의 침략을 받은 인간들이 고군분투하다가 외계인의 결정적 약점을 파악해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려 지구를 구한다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진부하다. 외계인들은 인간이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공격력을 지녔지만 항상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그 공격에도 끄덕 없던 외계인은 영웅으로부터 단 한 번의 공격을 받고 너무 쉽게 끝이 난다. 전쟁 영웅은 폼나게 다음 전장터로 발길을 옮긴다. 별 특징 없는 전형적인 캐릭터가 뻔한 이야기를 전개하다 느닷없는 감상적인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낸츠 하사가 죽은 전우들의 이름과 군번을 줄줄 외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렇듯 빈약한 이야기에 덧입혀진 화려한 스펙터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금새 식상함을 느끼게 할 듯.
이젠 외계인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공격하거나 뱀파이어와 외계인이 싸워야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세계인을 지킬 수 있는 건 미군 밖에 없다고 비춰지는 '미국 만세 정신'도 달갑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계인을 물리치기 전 미국 대통령의 비장한 연설이 없다는 점이다.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겠고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블랙 스완'을 더 추천하고 싶다. 시간 죽이기용 혹은 SF 영화 마니아는 한번쯤 봐도 좋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