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종목중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종목중 하나가 바로 궁도다.
다른 종목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어떤 형태로든 팀이 있고, 어릴때부터 전문 교육을 통해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는게 보통이나, 궁도는 학교에 아예 엘리트 과정이 없다.
대체로 성인이 된 후 주변에 있는 궁도장을 찾아 비로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궁도인으로 성장한다.
우연한 기회에 궁도를 접한 뒤 전북궁도의 위상을 전국에 떨친 김연길(70·궁도 6단) 전북궁도협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궁도를 하는 사람들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경기에 임하는게 오래된 관행이었다.
막걸리나 소주,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걸치고 얼큰한 상태에서 발사대에 서면 긴장감을 털어낼 수 있어 명중률도 높다.
지역 대회는 물론, 전국체전을 비롯한 굵직한 전국대회에서도 이러한 관행이 남아 있었다.
소위 '음주경기'가 공식 궁도대회에서도 허용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행을 하루 아침에 확 뜯어고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연길이다.
2002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체전때의 일화다.
궁도장에 처음으로 음주 측정기가 등장한 대회로 일부 선수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궁도 선수의 음주를 처음으로 제한한 대회로 지금도 궁도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이다.
자신이 지독한 애주가면서도 김연길 당시 대한궁도협회 전무는 음주 관행을 뿌리뽑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는 "음주 상태에서 활을 쏘는 것은 곧 약물을 복용하고 1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벤 존슨과 다를 바 없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관철시켰다.
이후 권위있는 전국대회에서는 음주 경기가 사라졌다.
평소엔 사람좋다는 평을 들었지만 뚝심있게 소신을 관철시키는 김 회장의 일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김연길 전북궁도협회장은 전주시 궁도협회장 7년, 도 회장 3년, 도 전무이사 16년, 대한궁도협회 경기이사 4년, 전무이사 7년을 지냈다.
이력 하나만 봐도 전북은 물론, 전국무대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수년전 선후배들에게 떼밀리다시피하며 대한궁도협회장으로 나섰다가 분루를 삼킨 바 있으나, 아직도 많은 궁도인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깊게 보고있다.
순창이 고향인 김 회장은 순창중과 순창농고를 졸업한 뒤 순창읍내에서 자영업을 하던중 80년대 초 당시 김덕연 순창경찰서장과 친분을 맺게돼 궁도를 처음 접했다.
취미삼아 수석을 즐겨했는데 궁도를 같이 하자는 권유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거다.
김덕연 당시 서장은 순창지역 활터인 '육일정'을 복원하는 등 훗날 유명한 궁도인이 됐다.
도내 17곳의 활터중 하나인 육일정에서 기본기를 익힌 그는 시간이 갈수록 궁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정확하게 145m의 거리에서 과녁을 향해 활 시위를 당기면 '티-융'하면서 날아가 딱 하고 맞는 느낌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라는 설명이다.
가로 2m, 세로 2m66cm 크기의 과녁에 명중하면 과녁터에 있는 사람은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 기를 동그라미 형태로 3번 휘두르는데 이때의 통쾌한 감회는 이루말할 수 없다.
궁도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는지 김 회장은 85년부터 98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도내 대표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했다.
전국체전엔 9번 출전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따내기도 했다.
95년 경북에서 열린 전국체전때 전북은 궁도를 싹쓸이 한 일이 있는데 향토사단의 무개차를 타고 전주시내에서 동료들과 카 퍼레이드를 한 일이 궁도인으로서 가장 가슴뿌듯한 순간이었다.
전주시 다가산 아래에 있는 궁도장 '천양정'에서 이사장을 하면서 그는 발사대 건물을 만드는 등 궁도인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전통 활인 각궁을 잡은지 만 30년이 된 지금 김 회장에겐 한가지 꿈이 있다.
내년이면 정확하게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활터 천양정이 전국 최고의 궁도 성지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기대다.
천양정에선 일제때인 1928년 전 조선인들의 경연장인 '전선궁술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또다시 전국 방방곡곡의 궁도인들이 천양정에 함께모여 실력을 겨루고, 경기가 끝난 뒤 함께 어우러져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의 꿈이 성취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