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서 봤던 건데…' 현실 닮은 드라마 붐

지난 15일 SBS 드라마 '마이더스'에서는 헤지펀드 론아시아의 CEO 유인혜(김희애)가 변호사 출신 펀드 매니저 김도현(장혁)에게 한영은행 인수를 지시하는 내용이 방영됐다.

 

론아시아는 국내 주요기업의 최대 채권자인 한영은행을 정관계 로비를 통해 싼값에 인수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상태였다.

 

이쯤에서 경제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라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떠올릴 법하다.

 

2005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국내 굴지의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되파는 과정에서 헐값 인수 논란과 함께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공교롭게 첫 회에서 론아시아 측이 김도현에게 면접비 명목으로 건넨 수표의 발행처도 외환은행이었다.

 

 

 

방송 후 트위터와 인터넷 게시판에는 '론아시아가 론스타를 빗댄 거 아니냐' '투기펀드가 은행을 집어삼키는 과정이 외환은행 인수 사건과 비슷하다' 등의 의견이 잇따랐다.

 

실화를 연상시키는 드라마는 비단 '마이더스'만이 아니다. MBC '로열 패밀리'는 재벌그룹과 정권간 결탁을 핵심 소재로 사용하고 최근 종영한 SBS '싸인'과 KBS '프레지던트'도 실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에피소드들로 눈길을 끌었다.

 

◇사회 치부 드러낸 실화에 주목 = 최근 드라마에 등장한 실화들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정관계 인사들의 모럴 해저드와 함께 국내 금융시스템이 해외 투기자본에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환은행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벌가의 이전투구를 다룬 '로열 패밀리'에서는 재벌 JK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위해 불법 비자금을 마련하고 정권과 결탁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대선후보와 대기업간 결탁은 2006년 불거진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연상시킨다.

 

1997년 대선후보에 대한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논의가 담긴 '안기부 X파일'은 정권과 기업, 언론간 유착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최근 사회적 비난을 받은 재벌가 자제의 맷값 폭행 사건은 '싸인'과 '마이더스'의 주요 에피소드로 다뤄진 데 이어 '로열 패밀리'에서도 한지훈(지성)의 대사에 등장했다.

 

드라마 제작진들은 대부분 실제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이지만 드라마의 주제에 부합하는 실화들을 참고했다고 인정한다.

 

'마이더스' 김영섭 CP는 20일 "실제 사건이나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지만 어떤 특정 사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여러 사건들을 드라마에 맞게 적절히 변형해서 쓴다"고 말했다.

 

'싸인' 장항준 감독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긴 했지만 대부분 김은희 작가와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며 "아이돌 스타의 죽음은 실제에서는 무죄 판결까지 받은 사안이라 제일 민감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장르 다양화 반영 =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냈던 실화들까지 드라마 소재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국내 드라마의 영역이 넓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화를 차용한 드라마들은 재벌가나 수사기관, 정계의 실체를 파헤치는 장르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가 겉핧기 식에 그치지 않고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벌어졌던 사건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마이더스'는 자금의 흐름을 통해 돈과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자연히 '검은 돈'과 결탁한 집단이 단골 소재가 된다. 온갖 로비 의혹으로 얼룩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매력적인 소재일 수밖에 없다.

 

'로열 패밀리'는 기득권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재벌가의 모습을 그린다.

 

멀쩡한 며느리를 금치산자로 몰고 손자를 호적에서 빼겠다며 협박하는 공회장(김영애)의 모습은 경영권을 둘러싼 재벌가의 다툼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낯설지가 않다.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 기반한 만큼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다.

 

'마이더스'에서는 시세 조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는 작전 종목에 단기간 투자한 후 차익을 챙기고 되판다는 뜻의 '쫀지포'라는 은어까지 나온다.

 

'로열 패밀리' 한희 CP는 "현실을 반영한 사건을 다루는 단계는 지난 것 같다"며 "요즘 시청자들은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디테일을 어떻게 채워넣느냐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