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1970)은 "현재의 최신 무기들을 볼 때 다음 세대에 일어날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種)을 절멸시킬 게 틀림 없다"고 일갈했다. 반전· 반핵주의자인 그는 "결국 인류 최후의 생존자는 산허리 한 구석에서 마지막 가쁜 숨을 헐떡이다 소름끼치도록 외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가 죽기 3년 전의 일이다. 그러면서 전 세계인들이 반전· 반핵에 적극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냉전시대 무기경쟁과 원폭투하를 경험한 그였으니 원자핵의 파괴력과 최신 무기들이 인류에 끼칠 폐해를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2만7000개의 핵탄두로 뒤덮여 있다. 미국(1만104개) 러시아(1만6000개) 프랑스(350개) 영국(200개) 중국(130개) 등 공식 핵 보유국가들이 2만6784개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75∼200개) 인도(75∼115개) 파키스탄(65∼90개)도 핵 보유국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4.5톤 짜리 우라늄 원폭 '리틀 보이'는 14만명의 목숨을, 플루토늄으로 만든 5톤 짜리 원폭 '팻맨'은 나가사키 시민 7만명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섬광만으로도 눈이 멀었다. 전쟁의 이름으로 자행된 참혹한 대학살이다.
핵분열 에너지를 극대화한 것이 원자폭탄이라면, 핵분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원자로다. 핵분열 속도를 제어함으로써 고열과 강력한 에너지를 전기생산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 원전이다. 원전은 27개국에서 443기가 시설돼 있고 62기가 건설중이며 158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언제든지 인간을 공격하는 무기로 둔갑될 수 있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이용해 핵분열 연쇄반응 실험을 성공시킴으로써 원폭개발을 가능케 했던 이탈리아 물리학자 페르미(1901∼1954)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숱한 생명을 앗아간 무기로 쓰인데 대해 괴로워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원폭개발 암호명)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1904∼1967) 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도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 내 손에는 피가 묻어 있다"며 핵폭탄으로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러셀의 경고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천만금의 무게를 지닐 것이다.
/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