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때, 목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전주 금암동 고속버스터미널로 직행하는 일은 내 일과 중 하나였다. 바로 고교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길에다 돈 뿌리고 다닌다" 고 혀를 내두르셨지만 타지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핑계로 나는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향수병이 도지곤 했다. 그땐 친구들이 모두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도 부러웠고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유행어도 실감날 무렵이었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머리가 커졌는지 철이 들었는지 이젠 계절이 바뀌어도 한번 갈까 말까할 정도로 변했다. 이유는 친구들도 나도 점점 학교생활에 바빠졌고 무엇보다 시간이 아까웠다. 왕복 여섯 시간에 차비까지 합하면 후회 없이 이 친구들을 보고 와야 할 일이지만 그렇지 못했다.
"왔나?" 몇 달 만에 본 친구들은 그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말투, 행동부터 머리와 옷 스타일까지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제 스타일 그대로다. 다만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선술집으로 동선을 바꾸며 어설픈 어른 행세를 하는 동안 우리들의 화젯거리도 점점 진화했다는 것뿐이다. 소개팅에서 토익으로, 아르바이트에서 취업으로. 하지만,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통금시간'이다. 수다에 흥겨워있다가도 적정 시각에 집에서 전화가 안 걸려오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친구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이들의 독립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 중 한명이 되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외박을 하는 것도 아닌데(물론 예외는 있어서 우리 어머니는 새벽에 들어온 나더러 신문배달이냐고 물으신 적이 있다) 규칙적인 시간에 걸려오는 부모님의 전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일 년 쯤 지났을 때는 친구들도 잔머리를 굴려가며 적절한 '알리바이'를 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 말하면 의심만 사기 마련이어서 일주일 전부터 고도의 심리전으로 밑밥을 깔아놓아야만 아무 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한 대단한 친구는 시내에 나와 밥만 먹고 돌연 집으로 들어간다. 부모님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모두 잠든 때를 기다려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온다. 무사히 우리와 상봉한 친구는 신나게 놀다가 부모님이 깨기 전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이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참 씁쓸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이 흉흉해 딸 가진 부모 마음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갖은 술수를 벌이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많을수록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는 무너져 독립을 하더라도 마음까지 멀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학습효과가 쌓이다가 정작 상의하고 넘어가야 할 일은 끙끙 앓다가 혼자 처리해버리는 것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수박 서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집 담을 타 넘는 것도 아닌데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는 이토록 비밀스럽다.
그에 반해 이런 부모도 있다. 성년의 날이었던 어느 날, 교수님은 올해 스무 살이 되는 딸에게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우리에게 물어오셨다. 향수나 장미꽃 등등 진부한 얘기만 오가는 도중,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라는 한 동기의 말에 모두 까르르 웃고 있는데 교수님은 한 술 더 떠 우리를 경악케 했다. 바로 콘돔을 선물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순간 멈칫 했으나 곧 의도를 알아차리고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 선물이 성년을 축하해주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든 터놓고 하라는 친구의 악수도 되겠고, 책임감을 가지라는 아버지의 염려도 되겠지만 무엇보다 서로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딸에게 알려준 상징이 아닐까. (우석대신문 편집장)
/ 임주아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