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영화] '로맨틱 헤븐' vs '킹스 스피치'

가슴이 따뜻해지는, 봄을 닮은 이야기

춘분도 지났고 햇볕도 따뜻한데 아직도 기온은 예전 봄 같지 않다. 칼날 같은 바람에 해 떨어지고 나면 다시 겨울, 봄다운 봄을 만끽하기에는 아직 이른 3월이다. 하지만 이미 봄바람에 취한 마음을 추스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주말이면 놀러가고 싶고 이유 없이 마음이 쿵쾅거리거나 설렌다면 여지없는 봄바람. 도와주지 않는 날씨가 야속하게 느껴진다면 극장 나들이를 권한다. 봄처럼 가슴 따뜻해질 영화 두 편 준비했다.

 

▲ 로맨틱 헤븐(드라마/ 117분/12세 관람가)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민규(김수로). 아내를 추억할 수 있는 일기와 수첩, 사진들도 함께 사라지자 아내가 마지막까지 안고 있던 빨간 가방을 찾는다. 또 여기, 시한부 판정을 받고 골수 기증을 기다리는 엄마를 지키는 딸 미미(김지원)가 있다. 그런데 찾아낸 골수기증자는 쫒기는 신세다. 할머니마저도 기억 못하는 할아버지를 가진 손자 지욱(김동욱)도 있다. 할아버지는 모든 걸 잊었지만 첫사랑 소녀의 이름만은 기억한다. 답답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첫사랑을 찾아달라 부탁하고 지욱은 첫사랑 분이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마침내 찾은 분이는 죽음의 위기에 놓여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공존 속에서 만난다. 이들의 사연이 옴니버스식으로 차례로 등장하며 관객을 맞이하는 것.

 

무겁게만 보이는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어 우울하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장진감독은 코미디 요소를 잘 배치해 두어 웃을 상황이 아닌데 서도 웃게 되는 희한한 코미디를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우리네 장례 문화가 어둡지만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 오묘한 즐거움은 장진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천국의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상으로 그리고 있는 천국을 예쁘게 잘 그려낸 것. 아무 걱정 없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영화 속 천국은, 대지진이나 전쟁, 작은 사건들의 연속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는 듯 보인다.

 

주연배우들 뿐 아니라 조연들까지의 조화도 잘 어울리고 따뜻한 스토리도 적당하지만 극 중 캐릭터들 간의 연결고리가 약한 것이 흠이다.

 

큰 울림은 아니지만 깊은 따스함은 느끼게 해줄 천국행 티켓이다.

 

▲ 킹스 스피치(드라마/ 118분/ 12세 관람가)

 

영화 공개 이후 '킹스 스피치'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영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2011년 아카데미 12개 부분에 후보로 올랐기 때문. 과대평가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고 멋진 영화라는 평가도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가슴 훈훈해 지는 영화라는 것. 그 외에 평가는 관객들의 손에 맡겨본다.

 

1939년,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포기한 형 때문에 왕위에 오른 앨버트(콜린 퍼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그가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이크다. 사람들 앞에 서면 말을 더듬는 그는 이 한 가지 콤플렉스 때문에 왕위가 벅차다. 그를 지켜보는 엘리바베스 왕비와 국민들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 결국 아내의 소개로 괴짜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를 만나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말 더듬증을 극복해 나가는데.

 

왕이 주인공이기 때문일까. 화려하고 멋진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배경이 재벌이나 왕실이라면 화려함이 당연한 전개일지 모르지만 '킹스 스피치'는 다르다. 왕의 이야기라기보다 장애를 가진 한 남자의 고군분투 혹은 장애 극복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그리고 그 싸움을 돕는 친한 친구와 가족을 등장시킴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다. 또한 '로맨틱 헤븐'에서처럼 재치와 코미디를 적절히 섞어 무게감을 유지했고 왕실에 대한 권위 보다는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소소한 일상이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감동을 전한다.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킹스 스피치'의 일등 공신의 배우들. 콜린 퍼스가 연기 잘 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헬레나 본햄 카터가 이런 역할까지 소화할 줄은 미처 눈치 못 챘다. 제프리 러쉬는 '샤인'에서의 괴짜 피아니스트 때보다 더 빛나니 완벽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비록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소재는 아닐지라도 인간적인 이야기가 그 무엇보다 따뜻하고 소중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