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신용평가사 S&P사는 세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라고 밝혔다. 쇠퇴, 그리고 단명이라는 숙명에 맞서 영원한 기업으로 남는 비결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변신하는 능력에 있다.
장수기업은 오래된 기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로 젊음을 유지하는 불로 기업을 의미한다. 긴 역사와 큰 기업일수록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변신을 두려워하고 혁신의 필요성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는 기업의 생명력을 순식간에 고갈시킨다.
1892년에 설립되어 카메라 필름 시장을 호령했던 코닥은 뒤늦게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자존심이며 세계 자동차 판매 1위였던 GM은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2008년 금융위기로 벼랑 끝에 몰려 파산보호 신청을 해야만 했다.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였던 모토로라는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의 꿈으로 불리던 위성전화서비스 이리듐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불완전한 기술, 비싼 요금으로 1년도 안 돼 중단했다.
반면에 설립 344년이 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독일의 머커사는 약국에서 제약, 화학회사로 탈바꿈해 현재 14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큰 위기 때마다 대변신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켜온 머커사의 현 CEO 칼 루드비히 클레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바꾸는 힘이 기업 발전의 원천이라고 했다.
장수기업의 첫 번째 변신 전략은 정체성과 핵심역량을 시대의 요구에 맞춰 바꾸는 것이다. 1802년에 화약제조업체로 시작해 최초로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해 엄청난 성공을 이룬 듀폰은 매출의 25%를 차지하던 섬유산업을 매각하고 종자회사인 파이오니어를 사들여 식량산업을 시작했다. 두산그룹은 1896년에 잡화상으로 시작해 100년간 소비재 산업에 주력했지만 최근 구조조정을 통해 글로벌 ISB기업으로 변모했다. 세계 각 지역에서 도시화가 가속될 것이며 여기에 필수적인 인프라 구축 사업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두 번째 전략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다각화 하는 것이다. 산업의 수명이 짧아질수록 한 우물 파기는 위험하다. 오랜 역사를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새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로환으로 유명한 일본 타이코우약품은 정로환을 대표상품으로 유지하면서 새로 감염관리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최근에 신규 사업이 약품사업의 이익을 앞질렀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달고 다시 젊어진 것이다.
세 번째는 점진적인 혁신이다. 일본의 기린맥주는 최근에 맥주 깡통 무게를 15g에서 14g으로 줄였다. 단 1g의 다이어트다. 급등하는 국제 원자재 가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자체 흡수했다.
사람들은 흔히 변화를 피하고 혁신을 외면하면서 지금이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동학혁명 직후에 탄생한 예수병원 또한 113년의 역사 속에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외환위기 등 수많은 시련을 겪었고 모든 세대가 새로운 도전을 받았고 그것을 극복하며 학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선교 병원, 호남최초의 근대병원으로 출발한 예수병원은 설립 이후 국내 최초의 한센병치료, 암등록사업, 재활치료, 농촌보건사업 등을 통해 시대 요구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면서 전통과 첨단 의술의 조화와 함께 지속적인 혁신으로 지역 거점병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경영자들의 공통된 관심사지만 전혀 다른 사업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은 수명이 없지만 사업과 시장은 수명이 있다. 기업은 언제나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 권창영 (전주 예수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