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정직은 가장 큰 힘이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최근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에서 사용할 사경의 제작과정을 촬영하면서 필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촬영감독의 얘기로는 현재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필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단다. 일본 대재앙의 결과다.

 

이렇듯 일본의 지진에 이은 쓰나미, 그리고 원전의 방사능 유출이라는 대재앙은 세계 곳곳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GM, 프랑스의 푸조, 포드, 크라이슬러, BMW 등에 비상이 걸렸다. IT 관련 산업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제품의 부품과 여기에 들어가는 핵심 물질인 유리, 금속, 필름 같은 소재를 일본 제품이 독과점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저력을 필자는 '정직과 기능을 중시하는 전통과 문화'에서 찾는다. 정직한 연구에 이은 기능을 중시하는 문화가 제품에 반영되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흔히 일본을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국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설령 자신에게 조금 손해가 되더라도 더불어 사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신뢰와 상생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기부지수는 부끄럽게도 세계 81위다.

 

예전 초조대장경 조사차 일본을 다녀오면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가 짙게 깔려 있는 나라임을 절감했다.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바로 민심이자 천심이다. 간혹 보내오는 선물을 통해서도 일본인을 이해할 수 있다. 국민소득이 우리의 2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낯간지럽다 싶을 정도의 선물을 부담 없이 한다. 작은 화지 10장 묶음으로부터 스카프 한 장, 때론 공예품 한 점 등 작더라도 자신의 마음과 정성을 결코 과대 포장이 없이 편지와 함께 담아 보내며 무척 소중히 생각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비록 단편적이지만 어린이들 과자를 보면 내용에 비해 포장이 거대하게 부풀려져 있다. 어린이들마저도 속이는 어른들의 후안무치 상술이 참으로 역겹다. 대형마트의 할인상품 역시 눈속임이 허다하다. 지난 설 명절에 받은 유명백화점의 한과세트는 포장만 무려 여섯 겹이었다.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란 말을 실물로 실감했다. 이러한 사회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공동체 의식은 세계 꼴찌이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20%(조사 대상국 평균 62%), 학교에 대한 신뢰도는 45%(조사 대상국 평균 75%)로 역시 꼴찌 수준이란다. 정직이 실종된 사회 탓이다.

 

정직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덕목 중 하나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최근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하여 일본식 행정의 문제점, 도쿄전력의 사실 은폐 의혹 및 설계와 시공의 부실 문제가 제기되었다. 세계인의 부러움을 산 높은 시민의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지도층의 허물 감추기이다.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의 후보자들과 최근 발생한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에서 관계자들이 보인 거짓 증언과 책임 회피용 말 바꾸기는 우리 사회 불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건강한 사회의 근간인 신뢰는 구성원간의 정직한 소통·지도자와 공직자의 정직한 정보 공개·언론의 정직한 보도가 함께 한다면 자연스레 구축되고, 이러한 신뢰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신뢰감과 함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이 되기 위해 대오각성을 해야 할 때다.

 

/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