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를 빛냈던 역대 전북 출신 유명 선수다.
지금도 박지성이나 박주영같은 스타를 꿈꾸며 도내 각 학교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어린이들이 부지기수다.
전북 축구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문철(75) 전 전북축구협회장이다.
그는 초등학교때 3년 남짓 선수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곤 정식 선수로 활동하지 않았지만, 1993년부터 2008년 말까지 무려 만 16년동안 전북 축구협회장을 역임했기에 전북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축구인중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축구 선수가 아니면서도 평생 축구를 해 왔고, 70대 중반의 나이인 지금도 흰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영원한 축구인' 김문철 전 회장의 이야기다.
김문철 전 회장은 운동 신경은 좋았으나, 키가 작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를 중단했다.
하지만 맨 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평생 축구를 즐겨왔고, 전북 축구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초대 생활축구연합회장을 맡으면서 엘리트 선수가 아닌 동호인 축구를 활성화 한 것도 그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20대때 남성고 운동장에서 익산 조기축구회장을 맡아 그라운드를 누벼온 그는 지금도 60대와 70대가 주축인 '익산 OB팀'선수로 매주 두차례씩 배산체육공원에서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병원에 납품하는 의료기기 관련 일을 해온 까닭에 직업상 골프를 해야만 했으나, 재미를 못느껴 그만두고 하던 축구를 계속했다.
축구인으로서 그의 가장 큰 공적은 월드컵 경기의 전주 유치에 일조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초중고 대회중 가장 규모가 큰 '금석배 축구대회'를 창설한 것은 다른 시·도의 부러움을 사고있다.
2002 월드컵때 전주에서 스페인-파라과이간 첫 경기가 열릴때 전북축구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눈물을 주르르 흘린 그의 일화를 지금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처음엔 전국 6곳에서만 경기를 한다고 해서 전주는 제외됐는데 도내 정치인, 자치단체장, 그리고 전 축구인들이 하나로 뭉쳐 싸운 결과 10곳으로 늘어나면서 전주가 포함됐다"는 그는 "월드컵 첫 경기때 느낀 뭉클한 감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완산 푸마가 버팔로가 되고, 그 후 전북현대로 넘어가면서 전북 프로축구가 활성화 된 것도 결국 전주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린 게 하나의 기폭제가 됐다.
버팔로 시절 돈이 없어 원정 경기를 치르지 못한다는 소식에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함께 응원에 나섰던 일도 있다.
김 전 회장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립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오랫동안 국제경기가 열리지 못하는 현상은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지금부터라도 굵직한 대회를 유치해서 전북과 전주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요즘 다른 종목은 다 폐지되거나 축소되지만 도내에서 축구팀만은 늘어나고 있다.
현재 도내에는 초등학교 11개, 중학교 8개, 고교 7개, 대학 8개 축구팀이 공식 등록돼 있다.
여자축구팀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교가 각 한개씩 운영중이다.
여자축구팀 창설 당시 삼례여중 한택 체육교사와 김수철 감독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도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고 한다.
삼례여중은 이후 전국무대에 우뚝 서며 현재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실업팀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전북 아마축구의 저변을 두텁게 하는데 김문철 전 회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 김대은 현 회장대행이 그림자처럼 그를 보좌했다.
김 전 회장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김대은 현 대행을 믿고 그를 전무이사 등으로 중용했다.
1992년은 전북축구계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해였다.
군산 출신 채금석 옹을 기리는 초중고 전국학생축구대회가 전북에서 창설된 때문이다.
서울을 포함해 전국단위 학생 축구 대회중 가장 규모가 크고, 특정 선수의 이름을 딴 것은 금석배가 유일하다.
최공엽 당시 전북일보 상무가 전북축구협회장을 맡고, 김문철 전 회장이 부회장을 맡고있을 때였다.
매년 한차례씩 전북일보와 대한축구협회·전북축구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금석배를 통해 박지성, 박주영이 각광을 받았던 것을 일반 팬들은 잘 모른다.
박지성의 경우 금석배에서 우수 선수상을 받은 일화도 있다.
매년 수천만원씩 20년 가까이 사비를 출연해 대회를 키우고 전북 축구발전에 힘써왔으나 그는 자랑하기를 꺼렸다.
50개 가까운 각 경기단체 회장중 매년 2000만원씩만 내면 '훌륭한 회장'소리를 듣는데, 김 전 회장은 매년 5000만원 이상을 출연했다.
김 전 회장은"집에서 싫어할까봐 몰래 했지, 지금도 구체적인 금액은 기사화 하면 나 혼나"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축구를 통해 만난 사람중 김 전 회장은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을 잊을 수 없다.
축구인으로서 그는 뭔가 전북을 도와주려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전주에서 열린 금석배때의 일화다.
평소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정몽준 전 회장은 도내 축구인들과 이른 아침 친선 경기를 가졌다.
소탈하게 전주콩나물국밥을 뚝딱 비운 정 전 회장은 때마침 금석배에 참가한 전국 110여개 축구팀을 격려했다.
전 선수단에 과일박스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전주시내 과일이 다 동났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장영달·한병도 전 국회의원은 축구 실력이 썩 뛰어나 김 전 회장을 비롯한 도내 축구인들과 직접 경기를 갖기도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그라운드에서 뛰고싶다"는 김 전 회장은 "전북 축구가 활짝 피어나는 걸 보는게 나의 소망"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