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의술(醫術)이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한 10년 전만해도 한국의 부자들이 암 같은 난치병에 걸리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나가 치료받는 것을 예사롭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외국 저명인이 한국에 치료받으러 온다. 지난 2008년 미국 하버드의과대학의 샘 윤 교수는 그의 어머니가 위암에 걸리자 서울대학병원으로 모시고 와서 수술을 받도록 해 화제가 되었다. 샘 윤 교수는 우리 교포이긴 하지만 종양수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지난 4월 19일에는 브라질과 헝가리 의사들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견학했고 일본 교토대학의 한 젊은 의사 교수도 연세대병원에서 암수술 연수를 받고 돌아갔다. 중국과 몽골 의사들도 한국연수를 다녀갔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인의 손기술과 창의성을 격찬하고 "한국 의사는 수술의 달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의술의 우수성은 수치로도 입증이 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위암의 5년 생존율은 한국이 63.1%로 미국 26%, 캐나다 22% 보다 월등히 높고 일본의 62.1% 보다도 높게 나타나 있다.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5발의 총상을 입고 의식불명이던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을 살린 것도 한국 외과의사의 기적 같은 쾌거이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사경을 헤매던 석선장이 과연 살아날 수 있을지 조마조마 했었다. 그러나 아주의과대학 의사진은 의식 없이 심장만 뛰던 석 선장을 특유의 인술로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한국 의사들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나타내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선 의사 개개인의 높은 지적 수준을 들 수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부터 전교 1, 2등 학생들 다수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이런 수재(秀才)들이 의료계에 몰리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사는 최고 인재집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에서 연수한 외국 의사들이 촌평한 것처럼 한국인의 손재주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에게는 몇 가지 독특한 재능이 있다. 손재주, 눈대중과 '가늠의 힘' 같은 소프트웨어 능력이다.
한국 의사들이 섬세한 수술을 잘 하는 것과 새로운 세대들이 컴퓨터에 능숙하고 휴대폰을 잘 다루는 것과는 연관이 있어 보인다. 모두 손놀림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손재주인데 한국이 IT강국이 된 것은 이런 재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손재주와 눈대중이 탁월하다. 옛날부터 밥을 지을 때 쌀과 물의 비율을 어떤 잣대로 잰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맞추거나 손을 넣어 가늠해서 정확히 맞춰왔다. 각종 요리에 들어가는 소금이나 조미료의 양도 눈대중으로 조절한다. 가지 수가 많기로 유명한 한식들의 간과 맛이 잘 맞게 요리되는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전주비빔밥은 손재주와 눈대중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들은 양궁과 사격 종목에서 기대 이상의 금메달을 따서 효자종목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독 이 분야에서 기량이 특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국인의 탁월한 가늠의 힘을 생각해 본다. 사격과 양궁은 다 같이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게임이다. 선수는 바람의 세기라든지 주변환경, 자신의 컨디션 등을 감안해서 조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조절이 가늠의 영역이고 한국 남녀 팀 모두 빼어난 가늠의 묘(妙)를 발휘했다고 여겨진다.
가늠과 손재주, 눈대중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나 상당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젓가락질을 잘 하는 민족에서 나오는 특징 같기도 하다. 과학에 기초한 용어가 아니라 오감(五感)에서 나오는 장기(長技)라고나 할까. 체력적으로 열세인 한국의 여자 골퍼들이 세계를 제패하는 이유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재주와 대중과 가늠이 합치면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를 잘 융합해서 전북의 발전, 나아가 한국의 융성하는 미래가 전개되는 것을 보고 싶다.
/ 조남조 (한국사료협회 회장·前 전북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