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 송환 문제를 비롯해 백두산 화산과 동해 표기 등 민간 분야를 중심으로적극적으로 대화를 제안하던 북한이 열흘 이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는 북측이 지난 2월부터 끈질기게 요구했던 귀순자 송환 문제를 논의하자며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안했으나 북측의 무반응으로 무산됐다.
정부가 4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귀순자 4명 문제와 함께 국군포로ㆍ납북자등 자유의사에 반해 북한지역에 억류된 우리 국민에 대한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지난달 27일 북측에 제안했으나 북측이 이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5일 "북한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넘어간 것은 이례적"이라면서"우리가 납북자 등의 의제를 함께 제시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을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 비춰볼 때 만나서 서로 다른 얘기를하더라도 일단 실무접촉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남은 의제는 백두산 화산과 동해 표기 문제다.
정부는 백두산 화산 전문가학술토론회를 5월 11∼13일 서울 또는 평양에서 열자고 지난달 28일 제의했지만 북측은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남북 간 연락 채널인 판문점이 휴일과 주말에 휴무인 점을 감안하면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남북은 지난달 전문가 회의에서 학술 토론회와 백두산 현지답사를 각각 5월 초와 6월 중순에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북측은 지난달 27일 동해 표기와 관련해 공동대처하자고 우리 측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안하고도 '5월 중순 개성에서 남북협의를 하자'는 우리 측 제안에도 반응이없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라는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남북 당국간 회담을 피해 민간 차원의 대화 소재를 적극 발굴하며 접촉 면을 넓혀왔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이는 북한이 본격적인 대화국면 진입에 앞서 대남 전략기조 전반을 재점검해보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우리측이 당초 제안한 '정치적 대화'인 남북 비핵화 회담에 어떤 식으로대응할지를 놓고 전략적 검토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북 이후 관련국들의 행보를 평가해보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략을 모색 중이라는 얘기다.
외교소식통은 "북한으로서는 초기 대화공세를 전개하던 상황과는 달리 우리 정부가 국면을 주도하는 양상이 되자 다소 당혹스러워하는 기류로 보인다"면서 "특히중국마저 우리측의 입장에 어느정도 수긍하는 기류를 보임에 따라 전체적인 전략을다시 가다듬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중국 우다웨이 한반도문제 특별대표와 협의를 거친 뒤 남북 비핵화 회담에 대한 전략적 대응기조를 잡고, 이어 나머지 '비정치적 대화'들에 관한 대응방향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에서 남측과의 비핵화 회담을 둘러싼 강온양론이 충돌하고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이 대화공세 대신 강경노선으로 선회할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침묵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대북 원칙론을 견지하며 북한의 확실한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쪽에 '방점'이 찍혀있으나 지나친 강경 대응으로 대화의 모멘텀을 놓친다면 정부로서도 그 책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특히 4·27 재보선에서 패한 여권 내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해 남북관계측면에서 유연한 대응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카터 전 대통령 방북 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의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 카드가 유효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특사로 그리스를 방문 중인 박근혜 의원이 "정부가 (경색된남북관계와 관련해) 뭔가 풀어가려고 모색하는 것 같다"고 말한 대목이 주목되고 있다.
오는 8∼14일 유럽 3개국을 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통일의 성지인 베를린에서 중대한 발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큰 틀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한 원칙을 언급하면서 북측을 향해 대화를 향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것이다.
천안함ㆍ연평도 문제를 남북 비핵화 회담과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일각에서 감지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