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숫물은 떨어진데 또 떨어진다. 그래서 돌에도 구멍을 낸다. 언론에 흘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괄이전이 꼭 그런 격이다. 정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하는데 정부나 여권 고위관계자들은 LH를 일괄이전키로 가닥이 잡혔다고 반복해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작년 9월이던가, 정종환 국토부 장관이 경제주간지 인터뷰에서 일괄이전을 언급했고 두달 뒤 국회 최규성 의원이 정부 고위 관계자가 언급한 것이라며 정부가 일괄이전 방침을 굳혔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벌집 쑤신 듯 지역이 왈칵했다.
최근엔 '상황 끝'까지 진도가 나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출국에 앞서 최종 지침을 내렸고, 정부는 13일 '경남 일괄이전'을 발표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쯤되면 바위 같은 심지를 가졌더라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는가 하는 반신반의로 굳어지고 만다.
LH 문제든 뭐든, 정치권이나 정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국민들은 알 도리가 없다. 그곳의 정치세계는 국민들한테는 외적인 영역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면 개인이 스스로 탐색하거나 상상을 하는 것, 누군가로부터 보고를 받는 것 등 세가지 방법이 있지만 앞의 두 방법은 한계가 따른다.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서는 누군가의 보고, 즉 언론보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칼자루를 쥔 정부나 여권이 언론의 이런 속성을 이용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플레이는 권력과 금력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언론매체를 통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깔린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언론 홍보이론은 언론플레이는 나쁜 관계를 만든다며 가급적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LH 일괄이전 언론플레이는 목적하는 바를 연착륙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언론플레이는 여론몰이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사기 또는 여론조작에 해당된다.
LH 일괄이전을 흘린 건 두가지일 것이다. 대통령의 의중이거나 경남에 몰아주려는 정치적 판단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절차를 밟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분산배치였던 정부 방침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일괄이전으로 선회했다면 독재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됐다면 지나던 소도 웃을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라면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판단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그것은 원칙과 기준에 따른 결정이다. 전북이 내건 분산배치는 정부 약속인 데다 두 지역이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에 하등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만약 일괄이전할 방침이라면 세부적인 기준과 원칙을 세워 심사한 뒤 전북 또는 경남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경남이 일괄이전을 주장했다고 해서 무작정 LH를 경남에 보낸다는 건 말도 안된다. 정부정책을 '뽑기'나 '찍기'로 결정한다면 너무나 유치하지 않은가. 일괄이전한다면 어느 곳이 더 경제적· 효율적인지 등을 심사해 입지를 결정해야 맞다.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마침내 민주당이 LH 분산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잘못된 건 반드시 바로잡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정책결정은 민주적 절차를 밟아 결정돼야 하고 절차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당연히 밟아야 할 이런 민주적 과정이 이행될 수 있도록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나서야 할 일이다.
그래서 언론플레이가 얼마나 무망한 것인지, 원칙도 기준도 없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지 드러내야 한다. 아니 땐 굴뚝엔 절대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겸.
/ 이경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