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색이 참 좋은 때다. 다시, 오월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리 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갈아엎는 달이 사월이라면, 오월은 겹겹이 층을 이루며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자연의 빛깔이 보여주듯 사물의 기운이 충만해지는 때다. 몸과 마음이 자꾸 밖으로만 도는 청년의 시간대다.
오월은 특별히 우리 현대사의 시간표에서도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역사의 중요한 고비들이 다 이 계절에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 또래들은 오월만 되면 몸이 막 뜨거워진다.
이제 막 싹을 틔운 4월 민주혁명을 뒤집고, 한강을 넘는 탱크와 군화로 장면 전환한 박정희 체제가 백년을 갈 것처럼 위세를 부리던 권력의 출발점이 1961년 5월 16일의 쿠데타였다. 그 오월의 반동을 다시 돌려놓은 것이 1980년 5월의 봄이다. 막 피었다 비바람에 스러진 여린 꽃들처럼 좌절한 민주화의 꿈과 오월 광주 시민 봉기의 핏빛 기억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를 오래 남겼던 역사의 봄이었다.
그 짧았던 봄의 마지막 기억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군의 항전 본거지였던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마지막 대치 장면으로 끝난다. 광주항쟁의 마지막 투사 윤상원은 투항을 거부하고 총을 든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총은 발사된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 형제들일지도 모를 어린 군인을 겨냥해 끝내 쏘지는 못하고, 그는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완벽한 고립의 순간, 그 새벽에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윤상원은 비바람에 지는 오월의 꽃잎처럼 너무도 이르게 낙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쓸쓸한 사라짐은 아니었다. 그처럼 자진해 스러진 수많은 꽃잎들로 인해 1980년대는 사계절이 언제나 오월이었고 오월을 통해서 우리 역사는 평화적 정권교체로, 남북의 화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다시 2011년의 오월. 1980년 광주가 품었던 대동세상의 꿈으로부터 31년의 세월이 지났다. 완벽한 한 세대의 전환이다. 대다수 어린 학생은 5·18을 교과서로만 기억한다. 좌충우돌 속에서도 한걸음씩 앞으로 전진해왔던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한참을 뒤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월의 신록이 그 선연한 빛깔로 제 계절을 일러주듯 역사는 굽이쳐도 결국은 제 갈길을 간다. 신민이 국민이 되고, 다시 공감과 참여로 행동하는 시민의 시대로 진화해온 우리 역사의 긴 호흡에서 보면 이 희한한 역주행도 한순간일 뿐임이 분명하다.
최근의 민심은 뜨거웠던 오월을 기억하고 다시 역사를 말하는 세대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80년 오월 그때의 내 나이가 된 아이들과 함께, 난 오래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려본다. "꽃잎처럼……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일찍 낙화한 꽃잎들을 그리워하며 오월의 헌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 속에서 어떤 비바람에도 지지 않는 그 역사의 꽃들은 여전히 희고 붉다. 그득하다.
/ 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