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전북은행-⑤1990년대

금암동시대 '활짝'…역동적 성장 가시화…지방자치시대 맞아 지역밀착경영 강화

전북은행 금암동 본점 전경. (desk@jjan.kr)

1990년대 들어 전북은행의 역사는 '금암동시대'로 요약된다. 금암동 본점을 앞세워 전국 최고의 향토은행이라는 자부심을 키워갔다. 1989년 12월 착공한 현재의 금암동 본점은 착공 3년6개월만인 193년 6월 23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본점 기념식은 1993년 7월 1일에 열렸다.

 

 

전북은행 금암동 본점 신축 상량식 (desk@jjan.kr)

금암동 본점은 당시 '호남최대의 건물'이라는 자부심을 앞세워 단숨에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향한 금암동 본점은 3000여평의 대지에 지상 20층·지하 3층의 규모로, 연건평은 1만2624평에 달했다. 특히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365일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하는 ATM을 설치해 적지않은 관심을 모았었다. 영업부 지하 1층에는 최신식 첨단시설을 갖춘 대여금고를 설치해 고객들이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1990년 9월에는 서울대 산업미술학과와 CI도입 계약을 체결한 뒤 다음해인 1991년 8월부터 기본디자인시스템, 심볼마크, 응용디자인시스템, 객장인테리어 모듈 등에 대해 새로운 CI를 적용했다.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이 CI는 다이아몬드를 형상화해 고객으로부터 무한신뢰를 받는 은행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은 경영경제연구소 개소식. (desk@jjan.kr)

 

 

전북은행은 1990년 말에는 총수신이 7781억원에 달했고, 총여신도 4673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또 1992년에는 금융자율화의 단계적 실시로 인해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서도 총수신 1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잠깐의 시련도 찾아왔다. 1992년 3월 남녀기성복 업체인 ㈜논노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200억원의 자금부담을 안게 됐다. 당시 전북은행 안팎에서는 '타지에 있는 기업에 과대한 여신을 지원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해 4월에는 신정제지㈜가 부도처리되면서 100억원의 손실을 안는 등 불운이 잇따랐다.

 

 

 

 

첨단시설을 갖춘 대여금고 운영. (desk@jjan.kr)

 

 

같은 해 7월에는 고광직 은행장이 퇴임하는 대신 정승재 은행장이 새로 선임됐다. 논노와 신정제지의 부실로 인해 경영난에 직면한 전북은행을 새로 이끌게 된 정 은행장은 '경영의 내실화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도민과 고객의 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동조합도 시련 극복차원에서 '우리 모두 한마음 운동'을 펼쳤다.

전북은행은 경영난의 와중에서도 같은 해 12월 전북애향재단에 장학금 5000만원을 출연하고 해마다 5000만원 출연을 약속했다. 또 전북경제사회연구원에 출자하는 등 지역사회에 수익을 환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전북은행은 금암동시대를 맞은 1993년의 경우 낭비성 지출의 과감한 폐지, 영업점 제일주의를 표방하며 점포수 증가 및 감량경영에 주력했다. 같은 해 3~4월 금융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대고객 서비스 강화를 위해 'START93'운동을 펼쳤고, 4월 1일에는 여행원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서무원들의 청원경찰 전직제도를 신설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성장가능성이 높은 유망 중소기업를 발굴하기 위해 '유망업체 선정 및 운용규칙'을 제정, 대출금리 감면 등의 편의를 제공했다.

6월에는 탁구부를 해체하고 국가대표 선수인 정소영을 중심으로 한 배드민턴부를 창설해 지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94년 들어서는 소형다점포전략을 주력한 결과 순창군을 제외한 도내 군단위 이상 전 행정구역에 점포망을 형성했다. 이에 힘입어 같은 해 9월 총수신이 1조5000억원을 넘어서는 뒷심을 발휘했다.

1995년 2월에는 중도퇴진한 정승재 은행장을 대신해 제8대 박찬문 은행장이 취임했다. 박 은행장은 임기내내 전북은행의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은행장의 내실경영에 힘입어 전북은행이 IMF경제환란의 쓰나미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 은행장은 취임직후 의식개혁, 서비스개선, 수신증대, 대출절차 간소화, 연체감축, 지역밀착화, 거액부실여신 추방 등 7대 중점사업의 추진과제를 제시하며 체질개선에 주력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금융시장 개발에 따른 금융서비스 선진화 및 국제화에 대비하기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해외현장체험연수를 실시하기도 했다. 11월에는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한지, 합죽선, 목기, 석기, 죽염, 민속주, 현미유, 장류 등 도내 특산품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1996년말까지 50억원 규모의 지방특화산업지원자금대출을 시행해 눈길을 끌었다.

1996년 2월에는 은행경영전략수립을 비롯해 지역금융 및 경제와 관한 조사연구, 신용대출관행 정착과 체계적인 여신사후관리를 위한 산업분석, 기업경영관련 정부수집 및 보급 등 지역종합정보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10억원을 출자해 ㈜전은경영경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전은경영경제연구소는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역의 중추적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박 은행장은 1996년 2월에는 여신업무의 효율적 지원과 부실여신의 사전방지를 통한 여신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분석실을 신설하는 등 리스크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박 은행장이 '선견지명의 CEO'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1997년 IMF경제환란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