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청소년 인구가 해마다 감소하는 가운데 다문화 가정의 학생 수는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처녀와 한국 농촌총각과의 결혼은 이제 새삼스러운 뉴스가 아니다.
특히, 베트남 여성이 신붓감으로 선호되는 이유는 베트남이 한국처럼 유교적 전통속에 부모를 공경하는 효심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머릿속의 베트남은 과거에 우리 군대가 파병되어 참전했던 전쟁시절의 그 베트남이다. 그러나 베트남과 우리의 인연은 멀리 고려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인들의 한국 이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인 13세기 초에 베트남의 왕족이 한국에 와서 화산(花山) 이씨(李氏)를 창건했다는 것이며 화산 이씨의 창건자는 이용상(李龍詳)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정선(旌善) 이씨(李氏)도 고려시대인 12세기 초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이양혼(李陽混) 이라는 베트남 왕자에 의해 세워진 집안이라는 학설이 새로 등장했다고 한다. 또한 막씨(莫氏)도 14세기 초에 고려를 방문한 베트남인이 그 선조라는 주장이 학계에 제출되기도 했다.
베트남 왕족에 의한 화산 이씨의 창건에 관해 흥미를 가졌던 사람은 '조선개화비담(朝鮮改化秘譚)'을 쓴 김영건(金永鍵)과 '13세기경 안남왕자의 고려 귀화'라는 논문을 쓴 최창수라는 민속학자이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의 국교가 재개된 후 베트남의 신문 '라오동 (Lao Dong)'지는 1994년 11월 24일자 지면에 13세기 초에 베트남 왕자 '리롱뜨엉'이 고려에 정착하여 화산 이씨를 창건했다는 것과 한국에 사는 '리롱뜨엉'의 32대 후손인 이창근씨가 화산 이씨 족보를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학교 국제문화교류센터에 전달했다는것을 보도했다고 한다.
'리롱뜨엉'이 한국말로 바꾸어 고려 때의 이용상(李龍詳)이 된 것 같다. 막씨(莫氏)의 조상도 '막딘(Mac Ding)'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을 베트남의 국립역사연구원 원장이었던 '반따오'가 논문을 통해서 주장한 바도 있다고 한다. 고려는 조선과 달리 대외관계와 대외무역의 범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넓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베트남 신부를 낯설게만 보아서는 안될 것 같다.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