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이 더해가는 5월,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가정의 달답게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행사도 많다. 학교도 중간고사가 끝나고 현장체험학습, 체육대회 등 행사로 이어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또 여기에 스승의 날이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스승의 날이 마음에 편치 않을 때가 많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화되었다. 갈수록 교사의 사회적 존중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정적 직업으로서 선택될 뿐이다. 그래도 이날 안부를 전하는 제자가 있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초임 발령을 부안고등학교로 받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어가는데,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여러 일들이 있다.
교직생활 하면서 눈시울 뜨겁게, 마음으로 반갑게 받은 몇 번의 촌지(?)가 기억난다. 초임지 부안고에서 3학년을 맡고 대학 원서를 쓸 때였다. 무척 성실하고 착실한 녀석이었는데, 어느 국립대학의 공업교육과에 원서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점수가 되지 않아 그곳은 힘들다고 하니 제 소원이니 써 달라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오신 어머니는 자식의 소원이니 써 달라고 부탁한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애정 표현이었으리라. 교무실 밖으로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몇 장의 천 원짜리 지폐를 펴더니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한사코 받지 않는다는 말에 서운함이 얼마나 컸던지 눈시울을 붉힌다.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졸업 후 그 아이는 취직을 하고 뒤늦게 대학을 다녔고 언제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신문》을 보내왔다. 그 책 속 쪽지에 "세속적인 빛에 가리어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잠시나마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형식적으로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작년 12월 만남 이후 반년이 흘러가고 있죠. 만남을 기약하며 건강하시고요. 앞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늘 가정에 평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제자가 바랄게요. 제자 올림" 스승의 날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래서 교사로 사는 것이 아닐까?
진안에서 근무하면서였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었고 순진한 녀석이었다. 지금은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열심히 근무하면서 가끔씩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녀석이다. 담임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부르더니 종례 끝나고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사거리로 가자 그 애는 가방 속에서 비닐 주머니를 꺼낸다. 그 속에는 예쁘게 익은 살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만 먹으라는 소박한 그의 마음이었으리라. 올해도 스승의 날 무렵에 전화가 왔다. 교사는 이런 보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진안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가르친 몇 명의 제자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을 때 한편 가슴 뿌듯함도 있었지만 오히려 앞으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사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희망을 주고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출근한다.
/ 이상훈(전주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