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과 자금지원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된 IIMF 구제금융의 후폭풍은 혹독하고 매서웠다. IMF경제대란의 도미노는 퇴출과 실업대란으로 이어졌고, 각 조직마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됐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동화은행을 비롯해 대동은행, 동남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이 퇴출됐다. 자력회생에 실패했던 상업은행-한일은행, 조흥은행-강원은행-현대종합금융은 합병됐다.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 하나은행과 보람은행도 대형선도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 합병수순을 밟게됐다. 1998년 당시 퇴출된 5개 은행을 제외한 22개 일반은행의 적자규모는 사상최대인 14조원에 달했다. 30곳에 달했던 종합금융사도 14곳으로 쪼그라들었다.
도내지역도 IMF경제대란의 시름이 깊어져만 갔다. 지역연고의 대표적인 종합금융사와 보험사였던 삼양종합금융과 BYC생명이 간판을 내렸고, 호남권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한남투자신탁도 국민투자신탁으로 넘어갔다. 도내에 소재했던 동화은행 2개 지점과 동남은행 1개 지점은 각각 신한은행과 주택은행으로 인수처리됐다. 특히 동화은행에 출자했던 도내 실향민들은 휴지조각이 된 소유주식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전북은행도 경제환란의 홍역을 치렀다. 전북은행은 IMF구제금융이후 22개 점포와 전 직원의 3할에 해당하는 361명을 감축하고, 본부조직도 3지역본부·10부·4실에서 8부·2실로 대폭 줄였다. 85개였던 일선 점포수도 63개로 줄었고, 영업점은 지역센터 및 위성점포체제로 정비됐다. ㈜전은경영경제연구소도 개소한 지 1년7개월만에 간판을 내렸다.
1998년 1월에는 삼양좀금과의 합병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측은 '삼양종금과의 합병땐 전북은행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단기외화부채와 부실자산을 떠안게 되고, 이로 인해 동반부실 및 전북경제에 예측할 수 없는 대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합병을 무산시켰다.
전북은행은 그러면서도 다른 은행들과 달리 '퇴출공포'의 악몽은 시달리지 않았다. 힘겨운 고통이 계속됐지만 치명적인 위기를 비껴갔다는 것.
무엇보다 당시 박찬문 은행장의 선견지명이 퇴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는 주된 배경으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 2월 취임한 박찬문 은행장은 취임직후부터 은행의 대표적인 건강 판단지표인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IMF구제금융에 앞서 부실여신을 정리하고 리스크관리에 주력하는 등 BIS기준을 8% 이상 유지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 지역별심사제를 도입해 사전에 부실여신을 차단했고, 전주·익산·군산 등 3곳에서 연체대출금 감축과 부실여신의 조기회수를 위해 채권관리전담반을 운영했다. 또 특정업종에 대한 여신편중을 방지하고 업종별 여신규모의 적정성을 통한 여신 건전화를 위해 업종별여신한도운용규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한국금융연구원과 공동으로 미국 뱅크웨어사의 소프트웨어인 자산부채종합관리(ALM)시스템을 활용해 각종 리스크의 효율적인 분석과 금리 및 자금량 예측에 따른 시뮬레이션 분석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업체별 신용위험한도 설정운용규칙을 시행, 담보위주의 여신관행에서 탈피해 기업의 재무구조와 영업성과 등을 바탕으로 하는 여신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안간힘을 썼다.
지방은행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박 은행장은 1998년 1월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10개 지방은행이 공동으로 협조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10개 지방은행공동협조융자협약을 체결, 공금고업무를 지방은행에서도 담당할 수 있는 명분을 갖추게 됐다.
이같은 결과에 힘입어 10개 지방은행 가운데 규모면에서 7위에 머물렀던 전북은행은 국내은행 가운데 BIS기준 자기자본비율 1위라는 성과를 냈다. 1998년 6월 기준으로 전북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15.95%에 달했고, 전국적으로 '전북은행=작지만 튼튼한 은행'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같은 해 6월에는 일부 시중은행과의 합병추진설이 제기돼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이에 대해 박 은행장은 "전북은행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병의사가 없으며, 일부 은행의 합병추진 계획은 실현가능성도 없는 자구책으로 시장원리에 의한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행위"라면서 "감독당국의 엄중한 주의환기가 필요하다"며 '지역특화전담은행으로 독자생존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국내 은행 최초로 신종합전산시스템에 대한 ISO90001인증을 취득했다. 1999년 10월에는 전북은행을 포함한 대구·부산·광주·경남·제주은행 등 6개 은행이 정기적인 공동상품개발과 공동마케팅에 나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방은행간 포괄적 업무 제휴 조인식을 갖기도 했다.
결국 전북은행은 CEO의 혜안과 전 임직원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시너지효과를 내며 IMF경제환란의 터널을 힘겹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