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야, 철들었냐. 철들면 금방 죽는다더라. 하하."(박성식)
지난 21일 합정동 연습실에서 만난 퓨전 그룹 '빛과소금'의 장기호(50.베이스)와 박성식(50.키보드)은 40년을 산 부부 같았다.
죽마고우(竹馬故友)인 두 사람은 서로의 말에 티격태격 정겨운 '토'를 달았고 "인터뷰하다가 난투극 한번 해볼까"라며 허물없는 농도 주고받았다. 또 "네가 한 말이 결국 내 말이야"라고 틈새없는 우정도 과시했다.
이들은 15년 만에 함께 오를 무대 준비에 한창이었다. 다음 달 11일 오후 7시 행당동 소월아트홀에서 '리:버스(Re:birth)-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란 타이틀로 공연한다. 1996년 5집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한 빛과소금이 15년의 휴지기를 깨고 기지개를 켜는 자리다.
"2008년 제 단독 공연에 장기호를 초대해 빛과소금 시절 레퍼토리를 선보였어요. 이때 팬들에게 '빛과소금 20주년인 내년에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했죠. 하지만 전 바쁘고 장기호는 분주해서 1년이나 늦어졌네요."(박)
"우리 팀은 깨졌다가 재결성한 게 아니예요. 1995년 제가 미국으로 유학가면서 박성식도 지휘 공부를 계획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휴지기가 됐죠."(장)
빛과소금은 1990년 한경훈(기타)까지 3인 체제로 출발했으나 1991년 한경훈이 탈퇴하며 2인 그룹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이들의 음악은 당시로선 새로운 소리였다. '샴푸의 요정' '그대 떠난 뒤'가 수록된 1집부터 퓨전 재즈란 실험을 감행했고 이지 리스닝 계열의 스탠더드 팝, 펑키 팝 등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길을 걸었다.
박성식은 "20년 전, 트렌드가 아닌 음악을 할 때 힘들었지만 지금 들어도 새롭고 후배들에게 리메이크 된다는데 자부심이 있다"면서 "우리 음악은 음식으로 치면 자주 먹지 않는 건강식이다. 건강식의 모델을 제시한 것 같다"며 웃었다.
장기호도 "오랜 시간 우리 음악이 라디오 주파수를 타는 건 생명력이 있다는 방증"이라며 "당시 음악인들이 많이 쓰는 악기 소리는 안 썼다. 상업 논리에 영향을 덜 받은 셈"이라고 맞장구쳤다.
서로의 말에 추임새를 넣는 장기호와 박성식은 다른 성격이지만 닮은 꼴 삶을 살았다.
이북이 고향인 부모를 둔 두 사람은 해방촌에서 초등학교 시절 만나 친구가 됐다. 대학 재수도 함께 했고 해군홍보단에도 시간 차를 두고 들어갔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해서도 같은 배를 탔다. 장기호가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 들어가자 박성식이 뒤따랐고, '사랑과평화'에서도 한솥밥을 먹었다.
"밤일에 지쳤는지 김현식 씨가 어느 날 밴드 제의를 했어요. 원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는 저,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 씨가 한 팀이었는데 유재하 씨가 솔로 음반을 내면서 탈퇴했고 그 자리를 박성식이 채웠죠. 또 사랑과평화에도 이남이 씨가 '울고 싶어라'로 뜨면서 팀을 나가게 돼 제가 박성식을 꼬셔서 합류했어요."(장)
박성식은 "항상 이 친구가 나를 팀에 끌고 가고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먼저 나오곤 했다"고 '껄껄' 웃었다.
세월이 흘러 나란히 실용음악학과 학과장 직함을 단 장기호(서울예술대학교)와 박성식(호서대학교)은 자신들의 음악 멘토로 김현식을 첫손에 꼽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제가 2년간 레코드숍을 했을 때 김종진(봄여름가을겨울) 씨가 단골 손님이었죠. 이후 1981년 저와 김종진, 김광민, 한상원 씨 넷이서 방배동 카페 채플린에서 연주했는데 김현식 씨가 보러 왔어요. 군 제대 후 이사하면서 인근에 사는 김현식 씨와 친해졌고 밴드까지 이어졌죠. 돌이켜보면 김현식 씨와 한 모든 게 새로웠어요."(장)
"김현식 씨를 만났기에 음악적인 안목이 높아졌죠. 밴드를 처음 할 때여서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만든 '비처럼 음악처럼'도 김현식 씨가 불렀기에 생명력을 얻었죠."(박)
그러나 이들의 음악 색깔에 오롯이 영향을 준 건 빛과소금 4집 연주에도 참여한 김광민, 정원영, 한상원이다.
장기호는 "이들은 우리의 음악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라며 "이들이 없었다면 재즈, 퓨전 사운드를 제대로 접하기 힘들었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제 자신들이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랬다. 여름 방학 때 새 음반 작업을 해 오는 11월께 열 공연에서는 신곡을 선보이고 싶단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갖고 오래 음악할 겁니다. 다음 달 공연이 '우리끼리의 잔치냐, 재조명되는 시점이냐'의 기준이 되겠죠. 20년 전 만들고 부른 음악을 대중이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따라 방향이 제시될 겁니다."(장)
이 단계를 넘어 둘은 빛과 소금 같은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며 "훌륭한 음악인이 되는데 최종 목표를 두기보다 그걸 바탕으로 세상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김장훈 씨처럼 대중으로부터 받은 명예와 부를 타인을 위해 쓰는 사람이 멋진 음악인이다. 우리도 재능 기부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할 것이다. 한마음이다"고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