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신선한 '내 탓' - 이경재

'군자 구제기, 소인 구제인'(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말이다. 훌륭한 사람은 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만 소인배는 항상 남한테 미루고 자기한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네 탓, 내 탓 하는 사람의 도량 차이를 적시한 말이겠다.

 

천주교 고백송에는 네 탓이 없다고 한다. 오직 내 탓만 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불가의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 사상도 따지고 보면 내 탓을 강조한 말이다. 2년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지난해 입적한 법정 스님 등이 일반 대중들의 내 탓 인식을 일깨운 분들이다.

 

내 탓으로 돌리면 잘못의 원인도 잘 보이고 다시 잘못하는 일도 드물게 되지만 잘못을 남한테 돌리면 원인이 잘 보이질 않고 잘못도 반복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탓을 인정할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용렬한 사람은 네 탓만 일삼는다.

 

토지주택공사(LH)를 경남에 통째로 넘긴 정부는 스스로 약속한 원칙을 파기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전북은 LH 유치 무산 같은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는 원칙과 상식의 나라를 꿈꿨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였다. 이 시기가 그의 시대였다면 'LH 사태' 같은 황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이 힘의 논리로 결정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원칙과 상식을 깨고도 이 정부는 사과 한마디 없다. 내 탓이 없으니 소인배 정부 아닌가.

 

그런데 작년 도지사 선거때 'LH 전주 일괄배치' 공약을 내건 정운천 전 장관이 죄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 죄인 심정으로 도민한테 사죄하고 나섰다. 지난 19일부터 호남제일문, 전북대, 객사, 한옥마을, 도청사, 롯데백화점 등에서 하얀색 한복을 입고 함거(檻車=죄수를 이송하기 위해 수레 위에 만든 감옥)에 갇혀 석고대죄해왔다. 오늘은 '도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다.

 

네 탓만 하는 세상에 내 탓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나선 그가 신선하게 느겨진다. '쇼!'라고 폄훼하는 정치인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는 그에게 묻는다. "함거 속의 죄인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모습 보여 주었느냐"고.

 

/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