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하러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그 도시의 입구나 거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을 보면 그 고을의 현안 문제들을 금방 파악할 수가 있다. 곧 숨 넘어가는 내용부터 그냥 아예 공갈 협박에 가까운 내용들까지 한 가지 현안을 두고 내건 현수막 형식과 내용들이 다채롭다. 현수막 내용들을 보면 '결사' '죽을지 언정', '목숨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고 같은 목숨을 담보로 한 내용들도 있다. 국책 사업 유치를 위한 그 고을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각오와 시민들의 결의는 누가 보아도 절박하고 타당하고 어떻게든 성사를 시켜야 할 것들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다급해도 책임을 질 말을 해야 한다. 국책 사업이 유치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시민을 향해 죽어버리겠다고 공언을 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자라는 아이들이 보고 있다. 그런 뻥 치는 어른들의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뻥' 교육된다.
전라북도에 LH 본사 유치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도민들의 분노와 박탈감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죽기를 각오 했던 현수막들이 찢어지고 색 바랜 채로 여기 저기 나 붙어 바람에 펄럭인다. 맥 풀리고 우울하고 을시년스럽다. 서울에 사는 딸아이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 야, 전주에 아직 삼성이 안왔냐?" '드디어 삼성이 전북에 온다.'는 현수막은 정말이지 우리들을 더 초라하게 하고, 쓸쓸하게 한다.
/ 김용택 본보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