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필자는 호남제일문 앞에서 함거에 올라 석고대죄를 시작했다. 지난해 전북지사 선거에 나서 LH공사를 전주로 일괄유치하겠다고 공약했었다. 30년 지역장벽의 한을 풀고 ,지역균형발전, 서해안 시대에 대비하는 의미로 LH공사 분산유치가 아닌 전주 일괄유치를 공약했다. 더욱이 필자로서는 아내의 공직사표를 걸고 배수의 진을 쳤다. 당락에 관계없이 정치생명을 걸고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필자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상실감에 젖어 있을 도민들을 생각했다. 지난 해 선거에서 필자에게 18.2%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보내 주셨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도민들을 뵐 낯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사죄가 될 지 필자는 그 방법을 고민했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이고 절 한번 하는 것으로 용서를 구할 수는 없었다. 결정된 국가 정책을 철회하라고 투쟁을 하는 것도 상책이 아니었다. 되지도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하게 책임을 지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성 있는 행동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함거 석고대죄였다.
왕조시대에는 왕이 주인이기에 왕에게 석고대죄를 청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다. 주인이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에게 석고대죄를 청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한 번도 해 본 정치인이 없기에 생소하고 쇼라고 백안시 할 시선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약속을 무겁게 알고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5월 19일 딱 1년 전 도지사후보 출정식 때 공약을 발표했던, 호남제일문에서 시작했다. 경기전 객사, 전북대정문, 효자4거리, 전북도청등을 돌며 일주일동안 계속했다.
필자로서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수감생활이었다.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하루 종일 한 평도 안 되는 함거에 갇혀 있으니 나중에는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가 있어 용기를 얻었다. '그게 어찌 당신 책임이냐'며 '당장 내려오라' 호통을 치시는 어르신도 있었다. '단식하면 몸이 상한다'며 주먹밥을 가져다주신 분도 있었다. 반면 옆으로 지나가며 '쇼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 청와대 앞에 가서 하라'며 못마땅해 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 모두가 필자에게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격려요, 질책이었다.
함거에서는 내려왔지만 그것으로 도민들의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LH공사 유치 실패에 따른 상실감을 회복할 수 있는 노력들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에 버금가는 효과를 기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는 것이 진정으로 도민들의 용서를 구는 길이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지혜란 생각이다. 이를 위해 필자가 가진 모든 역량과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다.
/ 정운천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