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거리에서] 노인대학 강연

직장을 그만 둘 때였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그 동안 선생 하느라 애썼으니, 점심을 사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신사분과 마주 앉았다. 자기는 지금 나이가 90살이란다. 60세 때 30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직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아흔 살이니,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30년을 산 셈이 되었단다. 살다 보니 정말 그리된 셈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냥 들었지만 듣고 나서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가슴을 때리는 울림이 커졌다. 30년 세월이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세월 아닌가. 더군다나 요즘처럼 각종 정보와 사회 교육 시설과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 아무 생각 없이 죽음을 기다리며 30년을 흘러 보냈다는 그 어른의 말은 충격이었다.

 

노인 대학에 강연을 갈 때가 있다. 늘 극구 사양한다. 만고풍상을 다 겪고 여기까지 살아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던 말인가. 우리나라처럼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격동의 세월을 헤쳐 온 어른들의 가슴엔 몇 개의 훈장을 달아 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세월이 아닌가. 도대체 상처투성이의 그들 가슴에 무슨 말을 더 얹어준단 말인가. 어찌나 완강하던지 몇 군데 강연을 갔다. 대구 달서구를 가서는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청장님이 오셔서 시를 낭송해주었다. 대구 달서구나 수성구에 자주 가는데, 어른들의 문화 수준이 높고 참여도 적극적이다. 지속적이고 오래된 학습효과다. 지난주 전주노인대학에 강연을 갔다. 연령대가 모두 75세 이상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사양했더니, 다른 지역은 가면서 우리 지역은 외면한다며 질타했다. 고민을 하다가 몇 가지 이야기 할 것을 간추렸다. 그리고 64살 어린 청춘인 내가 어른들에게 싸가지 없게도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말았다.

 

1,자식들한테든 그 어디에든 의지 하지 말자, 2. 가만히 앉아 부인을 시키는 일 좀 삼가 하자, 3. 나이 먹은 게 벼슬이 아니다. 특별한 사회적인 대우 받으려 하지 말자, 4. 남의 말 잘 듣고 나를 늘 고치며 살자, 5. 어떻게든지 신문을 보고 하루 한 줄이라도 책을 읽으려 노력 하자, 6. 잠 안온다고 힘들어 하지 말자. 잠 안 오면 일어나 다른 일을 찾아 하자, 7. 지금 70이면 90까지 산다고 생각하자. 초등 6년, 중·고등 6년을 다닐 시간이다, 8. 제발 왕년 가락 그만 풀어먹자. 지금을 귀하게 가꾸자, 9. 했던 말 또 하지 말자, 10. 오기 부리지 말고 고집을 버리자. 등등. 맞는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 김용택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