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칼럼] 재보선 비용, 당사자한테 물려라

 

지난 4월 치러진 일본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의원 수를 줄이고 월급을 깎자는 주장이 쟁점으로 대두됐다. 제3당인 공명당이 지방의원 수 감축과 월급 삭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이에 동조했다. 구체적으로 30% 선까지 줄이자는 지역도 있었다.

 

지방의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까닭이다. 직무유기에다 비리와 청탁이 노골화되면 우리도 일본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

 

지방의원들이 일부 권력화돼 군림하거나 인사· 사업청탁 등을 다반사로 하고, 집행부 들러리 서면서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조례 제정 등 본연의 일에는 소홀하면서 해외여행은 꼬박꼬박 나가고 의정비 올릴 궁리나 한다면 말이다.

 

자치단체장은 어떤가. 풀뿌리 자치를 위해 연구 노력하는 단체장이 있는가 하면 선거 캠프 종사자와 측근 챙기기에 관심을 쏟는 소인배 단체장도 없지 않다.

 

'상가집 개'라는 말이 있다. 상가(喪家)에서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며 먹이를 찾는 개를 이르는 것인데, 다음 선거를 겨냥해 돈이 되는 것과 표가 되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는 단체장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공무원 인사나 조직 및 사람 관리, 각종 사업도 모두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깜빵'가기 십상이다.

 

뇌물과 비리에 연루돼 중도하차하는 단체장이 전국적으로 수두룩하다. 민선 4기(2006~2010년) 시장 군수 230명 가운데 113명이 비리나 부정으로 기소됐다. 이중 35명을 재·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뽑았고 선거비용만 186억원이 들었다. 모두 시민 세금이다.

 

전북에서는 비리와 선거법위반 등으로 낙마한 단체장이 14명에 이른다. 이창승(전주시장) 이형로( 임실군수) 강근호(군산시장) 김상두(장수군수) 국승록(정읍시장. 부인 구속) 이철규(임실군수) 김진억(임실군수) 유종근(도지사)씨는 비리였고, 강수원(부안군수)씨는 공무집행방해였다. 김길준(군산시장) 최용득(장수군수) 이병학(부안군수) 윤승호(남원시장) 강인형(순창군수)씨는 선거법위반이다.

 

단체장이 중도하차할 때마다 지역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문제다. 여러 사업들이 구조조정되고 행정의 연속성이 훼손돼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심에서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속행되는 재판 때문에 행정신뢰가 실추되고 공직사회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지역의 이미지 훼손과 불명예는 물론 재·보선 과정에서의 주민간 반목과 갈등, 공무원 줄서기도 만연한다. 지역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재·보선 비용도 모두 시민세금이다.

 

한마디로 단체장이 한번 잘못되면 엄청난 사회· 경제적 비용을 치를 수 밖에 없다. 지역 이미지에도 먹칠한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아니겠는가.

 

지방의회는 지난 1991년 부활됐으니 올해로 20년, 민선 단체장 연륜은 16년이 됐다. 지방자치는 어느새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성년의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건 불행한 일이다. 이런 마당에 제도적 미비와 폐해를 그냥 방치해 두어선 안될 것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중도하차할 경우 재·보선 공영 선거비용을 당사자한테 물리는 방안을 제도화하면 불법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뇌물 등 개인 비리라면 당사자가 전액을, 선거법위반이라면 공천을 준 정당과 당사자가 각각 절반씩(무소속은 국가가 절반 부담) 부담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다. 그동안 공천폐지와 선거법 강화에 주력했지만 이젠 비리나 불법을 원인시킨 당사자에 대해 경제적 책임을 함께 묻는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