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있는 가가얀데오로시에서 빈센트 이마노 시장을 만나 예수병원과 가가얀데오로시 간의 상호교류 및 우호증진에 대한 협약을 하고 데오로시립병원에 CT를 기증했다. 우리는 앞으로 그곳에 초음파, 엑스레이 장비, 영상의학 진단용 컴퓨터 등 5억원 상당의 장비를 추가 기증하기로 했다. 또한 의료진의 장비사용 교육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서 데오로시립병원의 영상촬영과 진단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의료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켜 필리핀의 가난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곳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1960~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위생 시설이 형편없는 산부인과 분만실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가슴이 아팠다. 그 순간 우리나라와 호남에 처음 근대 의술을 전하고 이 땅에서 헌신한 당시 그들의 다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근대의학은 1876년 조일수호조약 이후 일본이 자국 거류민을 위한 병원 설립과 1885년 미국 공사관 공의인 알렌이 고종에게 건의해 왕립병원 광혜원이 세워진 후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호남의 근대의학 전파는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892년에 잉골드가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 받는 순간에 태동됐다. 이후 의대를 졸업한 잉골드는 8주간의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길고 험난한 여정 끝에 1897년 11월 전주에 도착해 어학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예수병원의 첫 진료를 시작했다. 초가 지붕 위로 감나무가 비스듬히 보이는 전통적인 흙벽의 작은 초가 진료소에서 첫 달에 100여명을 진료했다. 구한말 어려운 시대에 미신과 민간요법으로 몸을 망친 사람들 앞에 선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무엇보다 그녀의 헌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사람들은 "저 여자는 아주 기술이 좋아 아픈 사람을 보기만 해도 나아요."라고 했는데 이것은 잉골드가 환자를 대하는 지극한 자비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였다. 당시 남성위주의 전통적 사회, 육체적·정신적인 부담, 열악한 후원, 문화적·종교적 배타성, 부족한 영양과 신체적 한계 상황을 그녀 홀로 견뎌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늦게 결혼한 잉골드는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딸을 사산하는 극심한 슬픔까지 겪었지만 28년 동안의 봉사와 헌신을 계속했다.
예수병원 전 직원은 매월 급여의 1% 금액을 예수병원의 봉사단체인 국제의료협력단(국제NGO)에 후원하고 있다. 이런 후원을 바탕으로 국제의료협력단은 매년 12차례 이상 해외 의료봉사와 해외 여러 국가의 의료진 초청 연수, 장비 기증 등의 지원으로 국제사회에 대한민국과 전라북도 도민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예멘 앗따우라 정부병원 외과 의사와 간호사 등 4명이 예수병원 국제의료협력단 초청으로 우리 병원에서 연수를 받은 후 귀국했고,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보츠와나공화국에서 온 간호사는 3개월 일정으로 간호 전반에 대한 연수를 받고 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 빚진 자의 자세로 지구촌 이웃을 대할 때 세계를 향해 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예수병원 기독의학연구원 뒤편 언덕에 있는 예수병원 묘역에는 우리 병원에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17명이 잠들어 있다. 기술의 진보가 눈부시고 풍요는 넘쳐나지만 갈수록 가벼워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어서 영원을 사는 그들의 삶 앞에 다시 서야 한다. 한줄기 부드러운 사랑의 숨결이 불어오는 묘역에서 위대한 영혼들의 우리를 향한 무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무한 사랑의 감동을 넘어 가슴 떨리는 웅혼한 울림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그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 권창영 (전주 예수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