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사람들이나 번지르르한 카페도 사실은 모두 가짜가 아닐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그냥 구조에 불과할 뿐 사실은 위험한 게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을 폭력이라는 코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어요."
'풀잎처럼 눕다' '겨울 강 하늬바람' 등 소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뤄 온 소설가 박범신(65)씨가 이번에는 자본주의 문명 이면에 숨어 있는 폭력성에 주목했다. 25일 출간하는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문예중앙 펴냄)를 통해서다.
그는 "한 재벌가가 돈을 주고 사람을 때린 사건을 보고 무척 큰 충격을 받았다"며 "쾌락을 위해 돈을 주고 사람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설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나는 이번 소설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는 박씨의 말처럼 소설은 강도 높은 폭력이 전편을 지배한다. 리얼리즘에 토대를 뒀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치들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소설의 주요 무대는 '샹그리라'라는 5층짜리 원룸 건물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해 노숙자로 떠돌던 주인공 '나'는 이 건물의 관리인으로 고용된 뒤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샹그리라에 사는 인물과 그들이 벌이는 행태는 자본주의 문명의 야수성과 잔혹성을 드러낸다. 샹그리라의 주인이자 그 도시를 어둠 속에서 지배하는 '이사장'은 폭력과 악의 화신이다.
'나'는 이사장의 비정한 행각을 접하고 잔인함을 깨달아가면서 기이한 일을 겪는다. 손바닥에 숨었던 '말굽'이 모습을 드러내고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 끔찍한 살인을 잇따라 저지른다.
소설 속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을 거듭하다가 잊혀진 기억을 회복하면서 샹그리라의 눈먼 안마사 여인이 목숨을 버려도 좋을 만큼 사랑했던 소녀 여린이라는 것도 알게된다. 곧이어 이사장이 과거에 저지른 충격적인 사건도 드러나고 나는 '악의 수렁'에서 여린을 지켜내고자 결단을 내리게 된다. 여린은 타락한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존재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소설은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갈망을 전한다.
1991년부터 명지대 문예창작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그는 오는 8월 정년 퇴임하면서 교편을 내려놓는다.
그는 "아버지 노릇, 선생 노릇, 작가 노릇을 하며 내 인생을 3가지로 살아왔다"며 "7월 막내아들이 결혼하고 8월 정년 퇴임하면 내 인생의 2/3가 끝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작가 노릇만 남았으니 좋은 문학이 최우선이라고 믿으며 살 수 있는 찬스가 온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정도 열심히 써 볼 것이다. 쓰다가 순교하는 게 꿈"이라고 강조하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