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윤리적 판단도 그때그때 다르다?

길을 걷다 서류 뭉치를 떨어뜨린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가던 길을 멈춰 서류 줍는 일을 도와주거나 그냥 지나쳐 갈길을 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의 선택을 한 사람을 후자의 사람보다 더 친절하거나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한 쇼핑몰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이러한 실험을 했는데 첫 실험에서는 25명 중 1명이 서류 줍기를 도와줬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7명 중 6명이 도와줬다. 두 번째 실험 때는 피실험자들이 서류를 떨어뜨린 사람을 만나기 직전에 공중전화 동전 반환구에서 우연히 동전을 줍게 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 교수인 콰메 앤터니 애피아가 쓴 '윤리학의 배신'(바이북스 펴냄. 원제 'Experiments in ethics')은 이렇게 인간의 윤리적ㆍ도덕적 판단이 상황이나 심리적인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어떤 사람이 윤리적인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이 윤리적인 판단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은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 건제품 가게 근처에 있을 때보다 향기로운 빵집 밖에 서 있을 때 잔돈을 바꿔 달라는 낯선 사람의 요구에 응할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누가 친절을 베푼 이유를 물었을 때 "방금 동전을 주어서 기운이 났다"거나 "빵 냄새가 풍겨 기분이 좋아졌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내가 비슷한 처지에 놓였을 때를 생각해서" 서류를 줍거나 동전을 바꿔줬다는 식의 이유를 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자기 행동에 대해 남들 못지않은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 그 설명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54쪽)

 

이러한 실험을 통해 저자는 우리의 윤리적ㆍ도덕적 판단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 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틀 효과'의 사례는 이러한 저자의 말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한 실험에서 손 놓고 있으면 600명이 사망할 무서운 독감의 확산을 앞두고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대책을 마련하게 했다.

 

1그룹에게는 600명의 사망 예정자 중 200명을 구하는 정책 A와 600명 모두를 구할 확률이 1/3, 아무도 못 구할 확률이 2/3인 정책 B 가운데 선택하라고 했다.

 

2그룹에는 400명이 사망하게 되는 정책 C와 아무도 죽지 않을 가능성이 1/3, 모두 죽을 가능성이 2/3인 정책 D의 선택지를 줬다.

 

자세히 보면 정책 A와 C는 같은 얘기고, B와 D가 같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그룹에서는 다수가 A를 택했고, 2그룹에서는 다수가 D를 골랐다.

 

600명의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한 1그룹의 선택지 가운데에는 A가 B보다 나아보였던 데 반해 600명을 모두 구하는 최선의 상황을 전제로 한 2그룹의 선택지에서는 D가 더 옳은 행동으로 보였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라는 직관적인 판단을 할 때 그 판단은 전적으로 무관한 요소들에 의해 얼마간 좌우된다"며 "우리의 직관이 무관한 요소들에 좌우된다면 그 직관은 신뢰할 만한 지침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은주 옮김. 312쪽. 1만6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