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억지 효율

한기봉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사무처장)

 

최근 정부가 건설공사에 대한 최저가 입찰제를 확대 시행하려 하자 건설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적인 서명운동에 이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최저가 입찰제란 가장 싼값을 제시한 업체에 공사를 주는 제도다. 정부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아낄 수 있고 시장경제 원리에도 맞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건설업계는 기를 쓰고 반대를 하는 것일까?

 

공사 입찰제도는 크게 봐서 제한적 최저가 낙찰방식과 최저가 낙찰방식으로 나뉜다. 제한적 최저가 낙찰방식은 무조건 최저가가 아니라 일정비율 이상의 가격을 제시한 업체 중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에 공사를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최소 공사비가 확보되어 저가 시공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최저가 낙찰제는 건설업체간 무한경쟁으로 최소 공사비조차 확보하기 힘든 위험한 제도로 낙찰업체의 부도(도산)나 저가 하도급, 부실시공 위험 등의 부작용이 많은 제도다.

 

때문에 현재는 300억원 이상의 대형 공사에만 최저가 입찰제를, 그 이하의 공사는 제한적 최저가 입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가 이 기준을 100억원으로 하향함으로써 최저가 낙찰제의 확대 시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기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없는 집단이 정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확대 시행될 경우 건설산업은 고사위기에 처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면 경쟁력 없는 건설업체는 퇴출되고 그렇지 않은 업체는 살아남아 건설산업이 자연스레 구조조정을 하게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부도 직전의 불량업체가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투찰한 뒤 현금만 챙겨 부도를 내거나 대형 업체가 저가 투찰하여 하도급업체에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는 하도급업체의 부실화와 우량 원도급업체의 수주기회 박탈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약간의 비용절감을 위해 국가 기간산업의 하나인 건설업의 존립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값 싸고 질 좋은 소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며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고 관리비용을 아끼겠다며 주공과 토공을 통합하더니 부채가 많다고 진행 중인 사업도 중단하고 급기야 공사비 후리기에까지 나섰다. 어찌 보면 참으로 효율적인 정부다.

 

하지만 필자가 교과서에서 배운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민간의 자율적 시장조정 기능이 실패하지 않도록 돕고 민간이 공급하기 어려운 공공재를 공급하며 경기변동이 지나치게 심하지 않도록 조절하되 시장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교과서 어디에도 대책 없이 특정 국가의 특정 품목 수입을 느닷없이 재개하여 온 국민이 촛불을 들게 하고 효과도 불분명한 통합에 이어 지방이전 문제로 한 지역 주민들이 한없는 상실감을 느끼게 하며 건설경기가 침체일로인 시점에 공공사업을 축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내용은 없었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려 한다면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지원 제도부터 손질하라. 일하는 사람이나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소득이 똑같은 것이 시장경제 원리에 맞는 것인가? 지출을 줄이고자 한다면 4대강사업부터 중단하라. 엉뚱하게도 공사비 줄여서 예산 절감했다고 생색내지 말라.

 

현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품셈 현실화, 실적공사비 확대 적용에 이은 최저가 낙찰제 확대 시행은 건설산업 종사자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요, 배보다 배꼽이 큰 모양새다.

 

/ 한기봉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