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전설의 아전 김수팽

김승일 (객원 논설위원)

 

조선조 영조때 호조(戶曹) 서리를 지낸 김수팽이란 사람이 있었다.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전설의 아전'이란 호칭을 얻었다. 어느날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서 결재를 미루자 그는 대청에 올라가 판서가 두고 있던 바둑판을 쓸어버렸다. 그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결재부터 해 주십시오"라고 빌었다. 판서는 그의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동생 역시 아전이었다. 어느날 그가 아우의 집을 방문했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통이 놓여 있었다.아내가 부업으로 염색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동생의 설명을 들은 그는 두말없이 염료통을 모조리 엎어 버렸다. "우리가 나라의 녹을 받고 있는데 부업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 김수팽의 이런 일갈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청빈한 정신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조말 사대부들의 부정과 부패는 경국(傾國)의 단초가 될 정도로 극에 달했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민비(閔妃) 수족의 매관매직이 얼마나 우심했던지 과거에 급제하는데는 소과(小科)에 3만냥, 대과(大科)에 10만냥이 들었다고 한다. 벼슬길이 돈길이 된 것이다.

 

사대부 계층이 이렇게 썩었으니 동학혁명을 자초하지 않을 수 없고 조선조가 망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느냐는 자조가 나올법 하다. 매천은 조선왕조의 패망은 일찌감치 사화와 당쟁에서 비롯되고 있었으나 그 배후에는 반드시 공직자의 부정부패의 병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질타했다.

 

공직자의 사명감과 도덕성·청렴성은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매천의 매서운 질타는 다산(茶山)의 가르침과 함께 공직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금과옥조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대통령이 우려할 정도로 세상에 부정부패의 악취가 진동한다. 적자투성이 공기업이 성과급 잔치판을 벌이는가 하면 그 직장에서 녹을 받는 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로 떼돈을 벌었다한다. 사정기관의 최고위 공직자가 금융기관 부실을 눈감아주고 뇌물을 챙겼다. 국세청 고위간부는 세무조사를 봐준 대가로 퇴직후까지 억대의 사례비를 꼬박꼬박 챙겼다. 국토부 간부들은 연찬회 비용을 산하 단체에 떠넘기고 골프·룸살롱 접대 등 향응을 즐겼다. 회초리를 들어야 할 정부 부처가 이러니 일개 저축은행 경영진이 수십조원의 적립예금을 거덜내 서민 예금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도 검찰의 수사 뒤끝은 개운치를 못하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촛불을 든 대학생들의 절규 뒤에서는 어느 사립대학의 파렴치한 법인카드 부정사용이 학부모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이쯤되니 으레 그렇듯 정부는 공직사회 기강확립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사정(司正) 단골카드를 꺼내 들고 공직사회를 다잡을 기세다. 그러나 발본색원이니 일벌백계니 엄단이니 하는 케케묵은 겁주기 엄포는 하도 들어서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사정 대상인 공무원들부터 그럴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전설의 아전 김수팽 따라하기' 교육이나 시키면 어떨지.

 

민주주의 체제에서 고위 공직자나 공무원은 어차피 국민의 공복이고 아전일 수도 있으니까.

 

/ 김승일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