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태국-장세균

지난 6월 25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태국은 지상군 4000명을 비롯해서 육·해·공군을 6·25 전쟁에 파병한 나라이다. 지금은 골프관광 선호국으로 한국 골프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태국과 우리와의 인연의 역사는 오래이다. 1451년에 작성된 고려왕조의 연대기인 '고려사'에서 공양왕 3년, 1391년 음력 7월에 '섬라곡' 왕국이 '나이공' 등 여덟 명을 고려에 보내어 토산물 등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언급되는 '섬라곡(暹羅斛 )'은 지금의 태국을 가르킨다. '섬라곡'은 태국의 옛 명칭인 '시암'을 지칭하기도 한다.

 

고려에서는 일찍이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을 통해서 '섬라곡'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373년 중국에서 돌아온 사신의 보고를 통해서 '섬라곡'이 안남(安南),즉 베트남과 진랍(眞臘), 즉 캄보디아 등과 함께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중국 변방의 나라로 알게 되었다.

 

'조선왕조 실록' 중의 '태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듬해인 1393년 음력 6월16일에 '섬라곡 왕국은 그의 신하인 '나이장소도' 등 20명을 보내와 소목(蘇木) 1천근과 속향(束香) 1천근 그리고 토인(土人) 2명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왕은 이 두사람의 토인을 궁궐문을 지키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때 언급되는 토인 2명은 말레이 반도의 남부지역이나 인도네시아 섬들 가운데 하나에 살던 말레이 원주민으로 노예로 붙잡혔거나 팔려 태국 무역선에 실려서 조선에 오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당시 이 지역을 여행했던 포루투갈 사람 '토므 피르스' 여행기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 당시 남중국해 해안에서는 광범위하게 노예무역이 행해졌는데 태국도 노동력 획득의 방법으로 노예매매에 참가했던 것이다.

 

1395년 조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절단을 태국에 파견했던 것으로 '태조실록'에 나온다. 그러나 태조 초기에는 태국과의 무역에 적극성을 보였으나 일본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인적·물적 피해를 경험한 조선 조정은 태국과의 무역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이제 태국은 한국인에게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