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제 안에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아요"

착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건실한 청년. 영화배우 고수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 그에게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2008년부터다.

 

박근형 연출의 '돌아온 엄사장'이란 연극으로 무대에 도전하더니 손예진과 호흡을 맞춘 '백야행: 하얀 어둠속을 걷다'에선 곡절 많은 사연과 어두운 과거를 지닌 우울한 캐릭터 '요한'역을 선보였다. 그가 기존에 보여준 밝고 맑은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오는 20일 개봉되는 '고지전'에서 고수는 한 발짝 더 나갔다.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지닌, 전쟁에서 미쳐나간 김수혁 중위 역을 소화한 것이다.

 

장맛비가 띄엄띄엄 내리던 12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고수를 만나 그의 '변신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대하고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우선 제 욕구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군대 가기 전부터 꾸준히 멜로 장르의 영화를 해왔지만 '백야행'은 조금 달랐어요. 같은 멜로라도 사연은 기구했고 표현은 강렬했죠. 복잡한 내면을 많지 않은 대사로 표현하는 점도 저에게는 새로웠습니다."

 

고수는 새로운 작품에 꾸준히 도전했다. "변해야 한다"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 한쪽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는 "20대 때는 대본을 받아서 그걸 외우고 흉내 내는데 급급했다면 제대하고 나서는 제대로 연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연극부터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도전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샘솟던 그즈음 '고지전'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고지전'은 한국전쟁을 다룬 100억 원대 규모의 블록버스터였다. 탄탄한 내용의 시나리오가 그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블록버스터의 주연이어서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다른 사람이 수혁 역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수혁 역에 이미 매료된 상태였다.

 

"제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부담도 느꼈어요. 그러나 수혁 역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영화는 종전을 코앞에 둔 한국전쟁 당시, 하루가 멀다고 주인이 뒤바뀌는 애록고지를 놓고 '고지전'을 벌이는 남북 군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고지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은 이념의 허울을 조소하고, 전쟁의 포악 무도함에 점점 익숙해진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지 전투를 위해 영화는 십자 형태로 교차한 장대 밑에 카메라를 매달아 만든 '가마캠'과 같은 특수 장비를 비롯해 막대한 물량을 투입했다.

 

그리고 고지를 향한 '돌격 앞으로'를 그대로 재현해냈다. 고수는 4.5㎏의 소총을 들고 경사 높은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몸은 점점 너덜너덜해져 갔다.

 

"뛰고, 포복하고…. 어쨌든 필사적으로 찍었어요. 많이 다치기도 했죠. 모든 스태프가 고생 많이 했어요. 힘들다고 티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죠. 지금까지 찍었던 영화 중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영화였어요. 예전에 왜 하겠다고 그랬는지…. 후회를 여러 번 했죠. '고지전'을 찍고 나서는 작품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하기로 했습니다."(웃음)

 

육체적 난관뿐 아니라 '연기'라는 정신적 난관도 돌파해야 했다.

 

"예전에는 감성적인 연기에 치우쳤다면, 점점 이성적인 연기 쪽에 관심이 가요. 수혁을 연기하는 데는 호흡이나 표정 등 기술적인 부분도 쉽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에도 '고지전'을 통해 고생한 만큼 배운 것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의 길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끌리게 됐어요. 지금 제가 하는 작업은 제 모습의 일부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제 안에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아요. 조금만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기자로서의 폭을 넓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