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봉동 생강 - 조상진

완주군 봉동일대는 예로부터 생강 산지로 유명하다.

 

이곳 생강은 다른 지역 생강에 비해 뿌리가 크고 섬유질이 없는 게 특징이다. 더욱이 글루코스(포도당) 함량이 높아 매운 맛이 덜한데다 향긋해 임금님께 진상하는 특산품이었다. 저장 방법도 독특하다. 온돌 아래 지하 저장고에 저장함으로써 생강의 부패를 방지하고 신선도를 유지시킨 것이다.

 

봉동 생강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얘기가 전한다. 하나는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만석(申萬石)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건너가 봉성현(鳳城懸)이라는 곳에서 생강뿌리를 얻어 돌아 왔다. 이것을 지금의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에 심었으나 재배에 실패했다. 그러자 지명에 봉(鳳)자가 있는 이곳 봉상(鳳翔)에 내려 와 심은 결과 재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200년 전 일이다. 1820년에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서구(李書九)는 풍수지리에 밝아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관내 순시를 위해 봉동읍에 들렸다. 이곳 봉실산(鳳實山)의 산세와 지형을 두루 살핀 후 들판을 보더니 "이 근처에서 장차 향기로운 풀(香草)이 자라 사람에게 큰 복을 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뒤 과연 향내나는 풀이 자라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바로 봉동의 생강이라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완주지역 토산품으로 석류 울금 봉밀과 함께 생강을 꼽은 것으로 보아 두번째 얘기는 과장된듯 하다.

 

일제 때 신문(동아일보 1934년 8월 15일)에도 봉동 생강은 '조선에서 유일! 삼례 생강'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봉동면을 중심으로 고산 삼례 용진에서 재배자들이 조합을 조직해 100정보에서 3000석(石)을 생산했다.

 

이 생강조합은 자유당 때도 이어졌다. 한달 남짓 농림부장관을 지내 최단명(1954.5.6-6.29)에 그쳤던 율소리 출신 윤건중씨가 조합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농업을 잘 아는 농민출신을 장관에 임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윤씨를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윤씨는 독일 유학을 다녀와 독일식 협동조합 운동을 벌였다.

 

국내 최대 생강 집산지를 끼고 있는 봉상생강조합이 15일 (주)대상 청정원과 공동사업협약(MOU)를 체결했다. 연간 120톤(6억 원 상당)의 생강을 구매키로 한 것이다. 농민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 좋고, 기업은 좋은 품질의 생강을 구입해 상생의 해법이 아닌가 싶다.

 

/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