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이 시대 주인공으로 조조의 위, 유비ㆍ관우ㆍ장비ㆍ제갈공명의 촉을 생각하지만 삼국 중에서 가장 긴 생명을 자랑한 왕조는 오였다.
재일교포 인문학자로 일본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장을 역임한 이 연구소 김문경(金文京. 59) 교수는 이 시대의 주인공을 오와 손권(孫權)으로 본다.
최근 국내에 완역된 단행본 '삼국지의 세계'(사람의무늬 펴냄)에서 저자인 김교수는 위와 조조, 촉과 유비에게 억눌린 오와 손권의 '복권'을 시도한다.
사실 김 교수는 정사 삼국지보다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권위자로 통하기도 한다.
1993년 펴낸 '삼국지연의의 세계'라는 단행본이 그만큼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삼국지의 세계'는 1993년 단행본의 자매편이라고도 할수 있으며 삼국지에 대한 관심을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정사 '삼국지'로 확장한 성과물이기도 하다.
2005년 일본 고단샤에서 선보인 '중국의 역사 시리즈' 중 하나인 '삼국지의 세계'에서 저자는 손권이야말로 삼국시대를 연출하고 캐스팅 보트를 쥔 숨은 주역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위와 촉은 한(漢) 왕실의 정통을 다퉜기 때문에 동맹이 불가능한 불구대천 원수였다.
손권은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해 때로 위에 신하 노릇을 자청하기도 하고, 이런 위에 대항하고자 촉과 동맹하기도 했다.
삼국시대는 이런 오와 손권이 어느 나라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상황이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손권은 촉과 동맹한 적벽대전(208)을 거쳐 촉의 관우가 번성을 공략(219)하자 위와 동맹했으며 223년 유비가 죽은 뒤에는 두 번째 '오촉동맹'을 한다.
저자는 황제에 즉위한 손권이 촉의 제갈공명에게 제안한 이제병존(二帝幷尊),즉, 두 황제가 대등한 지위에서 동맹하는 발상을 심상치 않게 평가한다.
전통적인중국의 세계관에서 황제는 오직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손권이야말로 '노회한 현실주의자'란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이 책에서 삼국지연의가 덧씌운 이미지, 예컨대 간웅으로 각인된조조, 우국충정의 대명사 관우 등과 같은 틀에서 벗어나는 한편, 삼국시대를 중국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난세'로 간주한다.
유ㆍ불ㆍ도의 삼교가 정립하고, 문학이꽃핀 시대가 바로 삼국시대이기 때문이다.
송완범ㆍ신현승ㆍ전성곤 옮김. 544쪽. 2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