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해일은 영화 '최종병기 활'을 찍은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는 11일 개봉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조선시대 초야의 신궁(神弓) '남이' 역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그에게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줬다.
사극도 처음, 본격적인 액션 장르도 처음, 활쏘고 말타고 만주어를 접하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사극이란 장르도 그렇고 승마에 궁술, 만주어까지…뭔가 배워야할 게 굉장히 많았어요. 저라는 사람이 그 시대(조선시대) 사람이 돼 보는 것 자체가 생소해서 전통의상을 하나씩 여미고 하는 느낌이 남달랐어요. 낯선 데로 여행을 가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극이란 장르를 언젠가는 해보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만난 것 같아요. 액션 장르는 처음인데, 제가 운동신경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가르쳐주시는 분들한테 빨리 배운다는 얘기는 들었어요(웃음)."사극을 하고 싶었다고 해서 그가 쉽게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편성되는 사극 드라마가 많고 나날이 퀄리티도 좋아지고 있지요. 그런데 사극을 영화적으로 표현했을 때 어떤 매력이 있을까, 차별점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여름에 개봉하는 영환데, 사극이 좀 고루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면서 활을 통해 사극임에도 역동적인 부분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빠른 호흡으로 가게 되면 남다른 지점이 있겠다 싶어서 해볼 만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특히 영화의 핵심 소재인 '활'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그는 영화에 나온 활쏘는 장면을 거의 직접 해냈다.
촬영 전에 궁술을 비롯한 승마, 만주어 등을 3개월여간 집중적으로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액션이 활이어서 저에게 더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이 있어요. 힘들고 안 힘들고를 떠나서 활을 활용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특히 포즈를 신경써서 배웠어요. 양궁이나 서양식 활과는 차별점을 두고 싶었고 전통 기법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나 '로빈후드' 캐릭터가 몸을 측면으로 완전히 틀어서 활을 쏜다면 국궁의 기본자세는 고구려벽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마사법'이라고 해서 말을 타고 정면을 보면서 쏘는 개념이라고 배웠습니다. 뉘앙스의 작은 차이지만, 최대한 자세를 잃지 않고 해보려고 노력했죠."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 '남이'는 역적의 자식으로 여동생과 함께 어렵게 목숨을 부지한 뒤 초야에 묻혀 궁술을 연마하다가 병자호란이 터지면서 청군에 끌려간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청군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다급하게 청나라 부대를 쫓아가고 이후 어쩔수 없이 청나라 왕자를 해치게 되면서 적장인 '쥬신타'(류승룡)에게 숨가쁘게 쫓기는 처지가 된다.
영화 내내 추격전이 계속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고생이 필연적인 영화다.
"보통은 (일상에서) 산에서 잘 안 뛰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계속 산을 가로질러 뛰어다니면서 내리막길을 오르내리고 굴러떨어지는 것의 연속이다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같은 장소에서 류승룡 선배가 쫓는 장면을 찍고 제가 쫓기는 장면을 찍고…그런 촬영이 거의 무한반복됐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는 이어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가볍고 좋아지는데, 위험한 순간들이 많아서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컸다"며 "험한 산에서 찍다보니 잔부상도 많았고 큰 사고 없이 끝난 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얼마나 만족스러웠냐고 묻자, 그는 답하기 어려워했다.
"작품 전체를 냉정하게 보기는 사실상 힘들어요. 속도감에서는 예상했던 만큼나왔고 음악적인 부분은 기대 이상이었어요. 내가 해낸 물리적인 연기의 질이 음악을 통해서 더 효과를 받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제가 연기한 부분은 참 낯설었어요. 작품 할 때마다 제가 해놓고도 늘 낯선 게 있어요. 내 연기를 보면 너무 쑥쓰럽고 아쉬운 부분을 생각하게 되죠."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그는 올해로 영화 데뷔 10년을 맞은 노련한 배우다.
그간 주ㆍ조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모두 20여편. 내공이 간단치 않은 배우로 꼽힌다.
특히 '살인의 추억'이나 '이끼' 등에서 보여준 속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캐릭터는 그가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
"각 배우마다 기질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부분이 개성으로 드러났을 때 짙게 보일 때 감독들이 그걸 캐릭터로 활용하는 게 있는데, 제 안에 그런 면을 많이들 보시는 것 같아요. 특히 최근 몇 년간 스릴러 장르에 많이 나오다보니까 그런 이미지가 좀 쌓이는 측면도 있는 것 같고요. 스릴러 자체를 좋아해서가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흥미가 있는 작품을 택했는데 알고 보니 장르적으론 스릴러인 경우들이었어요." 그런 그지만 스스로 스릴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사실 저는 스릴러의 본질을 잘 몰라요. 한 장르에 치중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실제 성격이요? 평범하죠. 부담 없고 남한테 해 안끼치고…(웃음). 평소엔 표정에 다 드러나요. 잘 감추고 그런 성격은 아니에요."데뷔 10주년을 맞는 소회는 어떨까."변화가 있겠죠. 필모그래피가 쌓이면서 매 작품을 하며 바라보게 되는 생각들이나 현장에서의 움직임이나 그런 것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시간이, 나이가 주는 변화도 있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쌓이는 부분도 있고…그런 것들이 연기를조금씩 변화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는 이어 "물론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지만, 그런 영향들은 분명히 크다고 본다"며 "20대 때 했던 멜로나 로맨스가 있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30대에 바라보는 느낌은 사뭇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궁금해요. 내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나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