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정자기증을 통해 인공수정이 본격화 된 지 20년이 지났다. 미국 시사주간지 슬레이트는 인공수정이 합법화 된 후 매년 3만에서 5만명의 아이들이 수태되어 태어난다고 한다.
남자가 자기의 정자를 수태를 위해 다른 여자에게 기증하는 사람을 순수 우리말로는 '씨내리'라 한다. 반대로 여자가 임신을 못할 경우, 대신 남자의 정자를 받아 임신해주는 여자를 우리말로는 '씨받이'라 한다. 씨내리보다는 씨받이라는 말이 많이 통용된 것을 보면 조선사회에 씨내리 보다는 씨받이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우리 한국의 전통적 대리모인 '씨받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권위있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타기도 했었다. 조선사회에서 장손 며느리가 아기를 못 낳을 때는 이 씨받이가 등장하는 데 대부분 씨받이를 직업적으로 하는 여인이나 가난한 집 딸, 또는 종의 딸을 들여와 합방시켜 핏줄을 잇게 하기도 했다. 씨받이와의 합방날짜가 정해지면 저녁에 장정 몇명이 여자집에 들이닥쳐 이 씨받이 여자의 눈을 가리고 자루에 넣거나 업고 가는데 그 이유는 씨받을 집이 어느 고을 어느 가문인지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런식으로 해서 남자아이를 낳아주면 입마개쌀이라 하여 쌀 석섬을 보너스식으로 더 받는다고 했다. 만일 딸을 낳았을 때는 씨받이 부인이 양육해야 했는데 그 양육비조로 논밭 서너 마지기를 사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정자를 제공했던 한 남자에게서 129명이 탄생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남녀 합방의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인공수정의 발달로 인해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을 주게 되었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은 독신녀에게는 새로운 복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발달은 아기의 정체성 문제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갑을'부부가 아기가 없자 '병'이라는 남자의 정자를 '정'이라는 여자의 난자와 인공수정을 시킨후 '하'라는 여자의 자궁에 착상시켜 10개월 후 아기를 낳았을 경우 그 아이의 법률적 부모와 생물학적 부모, 그리고 낳은 어머니가 서로 달라 정체성의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전통적 가족 개념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