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도의 중심 익산] ②백제역사유적지구 어디까지 왔나

전북·충남 통합사무국 마련, 전문가 확보 시급…백제 문화권 행정 관할 달라 주도권 싸움 양상

(왼쪽부터)왕궁리 5층 석탑 사리병, 왕궁리 5층 석탑 사리내함 (desk@jjan.kr)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 마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는 지난해 "세계유산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연속 유산으로 신청된 두 마을의 통합적 관리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보류(refer)'했다. 두 마을이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고, 각기 다른 지자체 관할인 까닭에 보존·관리가 겉돌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WHC는 이를 뒤집고 '등재'를 결정했다. 문화재청과 경상북도·경주·안동시 등이 두 마을을 통합적으로 보존·관리하는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마련하는 등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 효과를 봤다. 하지만 '백제역사유적지구(가칭)'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하회·양동마을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띈다.

 

▲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 배경

 

백제역사유적지구는 하회·양동 마을과도 전혀 다른 모델이다. 하회·양동 마을은 안동시와 경주시가 추진하긴 했으나 경북도에 속해 있어 통합추진체를 마련하는 데 걸림돌이 적었다. 하지만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다르다. 전북도과 충남도 등 관할이 다르고 지리적으로도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지역은 커다란 백제사(B.C18~660) 안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공주·부여는 명백한 백제 중·후기 도읍지였고, 익산이 주장하는 '무왕(600~641)의 천도설'은 학계의 논란이 있다. 학계는 천도설·별도설·이궁설·행궁설 등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으나, 천도계획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익산 천도설'로 인해 익산이 백제 왕도로 부각됐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왕궁리 5층 석탐 (desk@jjan.kr)

 

공주·부여와 익산을 통합 추진을 주장한 노종국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두 역사유적지구가 각기 따로 등재할 경우 백제사가 분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서 "오히려 백제사 670년 중 500년 수도가 서울이었는데, 서울은 안 움직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구성요건에 부합되는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확대될 개연성은 없어 보인다.

 

▲ 통합사무국 출범 빨리 이뤄져야

 

전북도와 충남도는 통합사무국과 준비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등재 유산을 정리하고 등재 신청서를 작성할 통합사무국을 어느 지역에 둘 것인가다. 충남도는 통합사무국을 대전에 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전북도는 익산에 마련해도 문제될 게 없다고 맞서고 있다. 충남도가 내년에 홍성·예산에 들어설 내포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인 데다 문화재청도 대전에 위치해 통합사무국은 대전에 자리잡을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충남도는 통합사무국 출범을 위해 이미 1억5000만원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전북도는 도의회의 발의로 '전북도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지원에 관한 조례'만 마련했을 뿐 예산 확보의 노력은 없어 미온적 대응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문화재청은 전북도와 충남도가 하루빨리 통합사무국을 마련해 두 지역의 유산을 비교 연구하는 게 시급하다는 조언한다. 박희웅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담당자는 "통합사무국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주도권 문제가 아니라 업무 분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두 지역이 연속 유산으로 묶일 경우 어느 지역의 세계유산이 등재 가능성이 높은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지역의 유적지가 어떤 가치가 있는 지 학술적으로 증명할 때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 두 지역이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세계유산 등재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 객관성 담보할 백제 전문가 확보도 시급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두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관리 현황과 국내·외 비교연구 실적 등을 통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성(OUV), 진전성, 완전성 등을 증명해내야 한다. 하지만 공주·부여역사유적지구와 익산역사유적지구가 당면한 과제는 각기 다르다.

 

공주·부여역사유적지구에는 9개 지구 19건 유적으로 방대하다. 특히 삼국시대 고분 중 무덤의 주인공과 축조 연대를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등은 백제문화와 동아시아 고대 문물 연구의 잣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성을 갖는다. 하지만 부여 능산리 고분의 봉분을 높게 만드는 등 지나친 복원에 대한 우려, 고마나루 지구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훼손 가능성 등은 난제로 꼽힌다.

 

익산역사유적지구는 궁성, 국가사찰, 왕릉, 산성 등 고대 도성과 관련된 유산이 그대로 보존된 유일무이한 곳이라는 점에서 역시 탁월한 보편적 가치성을 갖는다. 특히 최근에는 마한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가 급증하고 있어 마한 백제사의 접근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마한은 철기 문물 도입으로 정복 전쟁이 생겨나 낮은 단계의 국가로서 익산의 토대가 됐다. 익산 영등동·율촌리·모현동·간촌리 등은 백제의 분묘를 수용하지 않다가 백제 무왕부터 마한 전통 분묘 대신 백제 중앙의 묘제인 석실분을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결국 무왕의'익산 천도설'에 관한 학계 동의를 얻어야 '마한 백제의 고도, 익산'을 입증하게 되는 것이다.

 

또다른 난제는 세계유산 등재에 중심 역할을 맡을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들이 건축 전공자들로 구성, 백제사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자체간 이해관계로 학계 내부에서도 백제역사유적지구 관련한 논쟁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때문에 객관성을 담보할 백제사 전문가를 확보하는 일도 시급해졌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