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단상(斷想)

고영한(전주지방법원장)

 

형사재판을 이야기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배심재판을 떠올린다. 이는 미국의 법정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우리의 기억을 선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멋진 제스처와 그럴듯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며 열띤 공방을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의 모습이나 직업과 기질이 서로 다른 배심원들이 오랜 시간의 토론과 설득을 통하여 만장일치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진한 감동을 남긴다. 이런 연유인지 몰라도 우리의 뇌리 속에는 영미식 배심재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형사재판을 하는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되어 2008. 2. 첫 재판을 시작한 이래 벌써 4년째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는 달리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되는 사건은 살인, 강도, 강간 등 중한 범죄 에 한정되어 있고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음에도, 실제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된 건수가 2008년 64건에서 2009년 95건, 2010년 162건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올해는 7월까지만도 벌써 134건에 이르고 있음을 볼 때 국민참여재판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에게 증거와 법원칙을 하나하나 설명해 가며 진행해야 하는 만큼 그 진행은 일반 형사재판에 비하여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일반 국민의 경험과 양식, 일상적 체험과 다양한 직업, 연령, 성별, 취향을 종합하여 상식에 맞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을 참관하고 있노라면 무엇보다도 국민참여재판이야말로 공판중심주의, 집중심리주의와 같은 형사소송법의 제 원칙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재판임을 실감할 수 있다. 피고인이 신청한 국민참여재판 1건에 대하여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심지어는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피고인과 변호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고 적극적인 방어를 펼칠 수 있다. 배심원은 법정에서 제시되는 모든 증거들과 증인의 증언, 그리고 검사와 변호인의 설명과 의견을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들으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참여재판은 가장 원칙에 가까운 이상적인 형사재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을 저질렀다고 기소된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일반 형사재판절차에 의한 재판을 받을 수도 있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합리적 의심을 강하게 일으킬 수 있다거나 통상인의 정서에 비추어 수긍할 만한 정황이 있어 배심원단의 설득이 가능하다고 예상한다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보다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법률종사자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으로 선정될 수 있다. 배심원후보자는 그 법원 관할구역에 살고 있는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되며, 기일에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의 질문을 통하여 배심원으로 선발된다. 전주지방법원에서는 정식 배심원으로 선정된 자가 아니면서 국민참여재판의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림자배심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다 많은 도민들이 그림자배심원으로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 보기를 권하고 싶다.(http://help.scourt.go.kr/nm/minwon/pjudgement/TVSaList.work).

 

이제 법관에 의한 재판은 국민 모두에 의한 재판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국민의 사법 참여는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국민과 법관이 죄 없는 자가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을 함께 막아내고, 죄 있는 자의 형량을 정하는 데 함께 고민해 보며, 법원에 일반 국민의 눈높이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이 특정 중대범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형사사건에 대하여 확대되어 국민의 사법참여 기회가 더욱 늘어나고, 형사재판이 좀 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발전되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