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爐之室 (대나무 화로가 있는 방)
竹:대 죽/ 爐화로 로/ 之:갈(go) 지, ∼의 지/ 室:집 실
이 작품 역시 추사 김정희 선생을 대표하는 명작이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추사는 명필로 칭송을 받기에 충분하다. 추사 당시는 물론이려니와 추사 이후 지금에 이르도록 중국 한국 일본을 통틀어 과연 이만한 작품을 써낼 수 서예가가 추사 말고 누가 있을까? 필획으로 보나 결자(結字:한 글자의 짜임새)로 보나 장법(章法:전체적인 어울림)으로 보나 흠잡을 데가 없는 작품이다. '竹'자는 왼쪽과 오른쪽의 높이에 차이를 두어 상하의 변화를 강하게 주면서도 다시 왼쪽의 '?'는 폭을 좁게 쓰고 오른 편의 '?'는 폭을 넓게 씀으로써 오른 편의 '?'로 하여금 낮으면서도 그 기세는 전혀 약해 보이지 않게 하였다. '爐'의 '불화(火)'는 앙증맞을 정도로 작게 쓰면서도 필획은 마치 도끼로 나무판을 찍어내듯이 종이에 붓을 들이대어 다부진 모양을 만들었다. '爐'의 오른쪽 부분은 수평의 가로획을 반복 중첩하였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굵기가 조금씩 다른 한 획 한 획이 마치 건강하게 자란 대나무가 적절한 무게감을 가지고 나긋나긋 거리는 것 같은 탄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선하고 경쾌한 것이다. '之'는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가 예서임에도 전형적인 전서의 글자꼴을 취하여 마지막 가로획을 수평으로 처리함으로써 다른 글자의 횡세(橫勢)적 분위기와 정히 어울리게 하였다. '室'자에 이르러서는 추사의 천재적 조형감각을 더욱 더 실감할 수 있다. '室'의 '至'부분을 마치 6각형의 창문 모양으로 씀으로써 실지 집안의 방(房)과 같은 분위기를 내었으니 실로 귀신같은 솜씨라고 아니할 수 없다. '竹'의 쭉 뻗은 가로획은 물론이려니와 힘차게 감아 올린 마지막 획도 겉모습은 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내적으로는 꿈틀대는 용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획의 비백(飛白: 먹물이 묻지 않도록 희끄하게 처리한 획)이 일품이다. '爐'의 끝부분 '皿'을 전서로 쓰고 마지막 가로획을 가늘면서도 약간 위로 굽혀 씀으로써 마치 요즈음 건축 공사장에서 흔히 보는 긴 철근의 가운데를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무게감과 탄력을 느끼게 한다. 혹자는 이 작품을 두고서 필획이 너무 부드러운 게 흠이라는 평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정말 모르고서 하는 평이다. 겉모습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탄력을 내장하고 있는 필획이 진짜 살아있는 필획인데 이 작품은 다 그런 필획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써준 것이다. 다 알다시피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차(茶)문화 중흥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며 추사와 절친한 사이였다. 추사는 늘 자신이 제조한 차를 보내주는 초의를 위해 초의가 차를 마시며 거쳐하는 방의 이름을 '죽로지실'이라 짓고 그것을 써준 것이다. 그렇다면 '죽로(竹爐)' 즉 '대나무 화로'란 무슨 의미일까? 대나무로 화로를 만들면 응당 타버리고 말텐데......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억측을 하고 있다. 혹자는 대숲의 서늘한 기운과 화롯불의 따뜻한 기운이 함께 감도는 방의 분위기를 '죽로지실'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라 하고, 혹자는 대나무로 장식한 화로로 해석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대숲을 바라보며 화롯불을 쬐는 방이라고 대충 풀이하기도 한다. 다 나름대로 낭만적인 해석이기는 하나 정답은 아니다. 정답은 '대나무로 감싼 화로'이다. 철로 화로를 만들고 화로보다 더 큰 크기의 대나무 껍질 커버(Cover)를 엮어 만들어 그 안에 화로를 넣은 다음 대나무 커버와 철 화로사이에 가는 흙이나 석회를 넣어 단열을 한 화로가 바로 죽로(竹爐)인 것이다.
그렇다면 추사는 초의가 죽로를 소장하고 있었기에 방의 이름을 '죽로지실'이라고 지어 써준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다. 필자는 최근 '죽로지실'이 추사와 초의와 다산과 아암 등 당시 대흥사와 관련이 있던 인물들의 교류와 우정과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상징하는 매우 의미가 깊은 말이라는 증거를 찾게 되어 현재《秋史「竹爐之室」'竹爐' 意味考》라는 논문을 집필 중에 있다. 논문이 완성되면 이 작품「竹爐之室」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깊고 높아지리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