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부터 정치판에 뛰어 들었다가 정치를 훌훌접고 떠난지 10여년이 넘었습니다.
이른바 불가에서 말하는 출가를 한셈입니다. 2009년 4월 29일 전주 완산갑 보선에 나가면서 다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무총장이 안경율 의원인데 안의원은 대학때부터 동기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대학동기 이기도하고 군대생활에서 같은 내무반에 있었던 전우이기도 합니다. 안의원이 출마를 몇 번 종용해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정치가 안되고 못되어서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하고 털고 일어섰지만 마음 한 끄트머리에는 미련이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치판에서 출가도 쉽게하고 다시 복귀 하는것도 쉽게 해서 사실 눈치가 많이 보였습니다.
저를 우유부단하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들어내놓고 하지 않아서 스스로도 자평합니다.
그러나 가슴엔 뜨겁게 개혁의 의지가 있습니다. 떠드는 개혁론자는 사실 개혁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이비이거나 프로파간다 용이거나 설익은 개혁론자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은 떠들면서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경험칙상 처절하게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낮추어 잡고 느리게 잡아서 보수적입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보수적입니다.독일 학자 송두율이가 말하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경계인입니다. 다른 분은 몰라도 제 경우에는 설익은 미완성이었고, 지금 시각에서 보면 큰소리만 치고 유치한 개량주의자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과거를 회고해보면 젊었을 경우에 뭐가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무엇을 해야 되겠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저는 정당인이나 조직인으로서 성공을 못했습니다. 성공을 바라는 정치적 삶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깨달음은 지적인 방황과 좌절을 겪어보고 난 후의 얻어진 교훈입니다. 이제는 성공을 추구하는 정당인,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시대와 지역이익에 관심을 갖는 현장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 복귀하고자 합니다.
롱펠로우 시에서처럼 황혼이 되어도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라는 구절처럼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는 힘에 벅차고 오직 고향을 사랑하는 현장 정치인 또는 사이비(?) 지식인으로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전 전주대학교 교수 ▲전 국정교과서 이사장 ▲전 전북도 정무부지사 ▲현 한나라당 전주완산갑 당협위원장 ▲현 전북지역발전특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