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법원의 업무는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에 비중을 두고 이루어져 왔으나, 근자에 이르러 가정과 소년의 문제를 다루는 가사재판의 중요성이 새로이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급속히 증가하는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문제와 함께, 지나친 경쟁과 가정교육 부재로 늘어가는 청소년 문제를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사회의 기초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에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종래 가정법원의 역할이나 재판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법원이 단순한 재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국민의 진실한 후견인으로서 사건에 내재한 국민의 고통과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여 그들이 건강한 가정과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치유적, 복지적 관점에서 사건을 풀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대법원은 우선 접근이 용이하고 한층 더 수준 높으며 전문화된 사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끔 서울에만 있던 가정법원을 확대하여 금년 4월 11일 부산가정법원을 개원하였고, 내년부터는 대전, 대구, 광주 등에도 설치하며, 향후 전주를 비롯한 주요 도시 대부분에 순차적으로 가정법원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 민법 및 가사소송법을 개정하여, 자녀의 친권자·양육자뿐만 아니라 양육비나 면접교섭의 문제까지 확정짓지 않고서는 이혼이 불가능하도록 이혼제도를 개선시키고, 양육비의 지급을 확보하기 위하여 '양육비 직접지급명령', '담보 제공명령', '일시금 지급명령' 제도 등을 도입함으로써, 자녀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한 것도 이와 같은 가정법원의 역할 변화에 따른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한 인식변화에 발맞추어, 법원에서는 종전에는 보지 못하였던 다양한 제도들이 시도되고 있다. 예컨대, 법원의 후견적 역할을 강화하여, 별도의 예산을 확보하여 미성년 자녀가 있는 재판 당사자에 대하여는 부모교육을 받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양육사항에 관한 의견을 서로 교환하는 양육수첩을 스스로 작성해 보게 한다든가, 솔루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자녀상담, 부모상담, 부모 또는 자녀에 대한 심리검사, 심리치료 등을 시행하는 것 등이다. 법원이 지역의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정기적인 협의체회의를 통하여 의사소통방법 등에 관한 의견교환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해결 법원을 지향하는 의지의 모습이다.
소년재판의 변화를 보면, 먼저 경미한 비행을 저지른 소년에 대하여 또래 청소년들로 구성된 청소년 참여인단의 진행으로 사건을 심리하고 적합한 부과과제를 선정하여 이를 성실히 이행할 경우 보호처분을 하지 않고 심리불개시 결정을 하여 사건을 종결하는 청소년참여법정제도가 눈에 띈다.
합의나 피해변제가 필요한 사건에서 갈등해결 전문가의 주도로 가해 소년 및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화해시킴으로써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하고 가해 소년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돕는 화해권고제도나,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의 보호능력이 미약한 경우 법원이 위촉한 자원보호자에게 보호소년을 위탁하는 소년자원보호자 제도 등의 도입도 소년보호사건의 분쟁을 또래 및 지역사회에서 함께 풀어 나감으로써 파괴된 가해소년과 피해자 및 사회공동체 사이의 관계 복원에 일조하고자 하는 법원의 한 단면이다.
앞으로도 가사·소년재판과 관련하여, 사회복지기관, 행정기관, 대학 등의 지역사회와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청소년쉼터, 보육시설, 소년자원보호자, 범죄예방위원, 보호관찰소, 소년원, 건강가정지원센터, 국선보조인 등 많은 유관기관 및 민간 기관과의 의사소통에 의한 유기적 협력과 공조를 더욱 증진함으로써, 중복되거나 비효율적인 업무를 없애고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하여 각 기관의 좋은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재판에 적극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긴밀한 연계를 통하여, 가사·소년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고, 가정법원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만족도를 높임으로써, 가정법원이 후견적·복지적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 지역사회 내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굳건히 해내기를 기대해 본다.
/ 고영한 (전주지방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