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학생들이 시골학교로 몰려든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학교다. 무한경쟁 시대를 역주행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산골 조그만 사립 중학교가 그들을 둥지처럼 품어내고 있다. 기숙사 생활과 영재수업, 특성화 교육으로 미래 지도자를 키운다. 외국 결연학교와의 교환 학습은 호연지기가 따로 없다. 완주군 화산면 화산중학교(학교법인 화봉학원).
겉으로는 여느 농촌학교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연간 6천여명의 벤치마킹 시찰단이 다녀갈 만큼 명성을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의무교육 시범학교에 이어 2005년에는 전국 최초의 자율중학교로 승격됐다. 그 이듬해 신입생 모집에선 10대1이란 높은 경쟁률을 올려 교육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교육은 대도시에서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교장직에서 물러난 심의두 제4대 이사장(76)의 '인간 상록수' 같은 활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농촌 성인교육과 고등공민학교를 세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곡절도 많았던 교육 인생 50년. 그 역정을 관통하는 건 뭘까. 그는 취재진을 맞는 자리에서 '신의(信義)'라고 말했다.
※자율학교란
초·중등교육법 등에 따라 교장임용, 교육과정 운영, 교과서 사용, 학생선발 등에서 자율성을 갖는 학교이다. 자립형 학교와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전국에서 학생 선발이 가능하다.
-왜 신의입니까.
"그게 스스로 힘든 과정을 버티게 만들었어요. 사실 인간관계에서 믿음과 의리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나요. 사회생활의 원동력이죠. 신의는 공정성을 기반으로 삼아 예나 지금이나 리더의 첫 번째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의교육은 매우 소중해요."
-신의교육이란 게 뭐죠.
"전인적인 인격형성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신의로서 교육해야 하거든요. 입시위주 교육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지도자를 키울 수 없습니다. 신의 없는 자가 무슨 일을 하겠어요. 보나마나 뻔한 거 아닙니까. 언제 어디서나 우선 신의를 지키고 성실히 노력하는 인간이 필요해요. 이건 교육자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학교생활목표를 '신의, 성실, 노력'으로 삼고 있지요."
-건학이념이네요.
"그렀습니다."
-학교 설립의 계기는요.
"일찌감치 그런 생각이 있었지요. 중학생 때 완주 봉동으로 왕복 100리 통학 길을 걸어 다니느라 매일 코피를 쏟다시피 했던 거죠. 너무 힘들었어요. 자연히 나중에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 차올랐습니다. 산간벽지 자녀들은 배고픈 설움에다 배우고 싶어도 기회마저 없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중학교였나요.
"아닙니다. 대학 4학년때인 1963년10월 마을성인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면사무소 회의실을 얻어 공간을 마련하고, 2년째에는 그 칸을 막아 중등과정 1학년 52명과 2학년 33명으로 나눠 가르쳤어요. 1주일에 72시간을 뛰었습니다."
-혼자였나 봅니다.
"물론이죠. 두 학년 전 과목을 혼자 왔다 갔다 하며 담당했어요. 그땐 피곤한 줄도 몰랐어요. 농촌이 잘 살게 하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뭐, 정말 몇 년간을 그렇게 무료로 가르치게 되더라고요."
-농촌계몽운동 아닌가요.
"글쎄요. 돈도 없고 배움도 없으면 누가 쳐다봅니까. 무엇보다 배워야 지역도 잘 살지요.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산다고 믿었어요. 농촌은 뿌리요, 도시는 꽃입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농촌에 아예 학교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농촌학교는 지역의 상징이고 지역민의 의지처예요. 학교와 지역은 흥망과 보조를 같이 하는 공동체입니다. 아들딸들이 희망을 싹틔워가는 곳 말이죠. 지난해에 면민교실과 중국어 교육센터인 공자 학당을 세운 것도 이런 농촌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차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그런 성인교육을 하면서 중학교 설립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뜻밖에도 주민들이 코웃음 치는 조소를 보였어요. 국가도 돈 없어 못 세우는 학교를 어떻게 개인이 할 수 있겠냐는 거죠. 급기야 선친도 결혼한 자식을 1964년말 안채에서 사랑채로 몰았습니다. 그 때 쌀 한가마니와 논 590평을 줬으니 사실상 분가했어요. 그러고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동네 종중산 1천평을 빌려 안사람과 함께 개간해 고추도 심고 닭 돼지를 길러 돈을 모았습니다. 당장 학교 부지 8천평을 구입했습니다. 지금 학교자리입니다."
-그때 고등공민학교를 세우기로 한 거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학교 부지를 마련했지만 교실 6개를 신축하다보니 쌀 1,200여가마의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궁하면 트인다고 말 못할 고생으로 겨우 살 길 찾았지요. 건물완공에 앞서 화산고등공민학교 설립인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때서야 주민들도 돕겠다고 하더라고요."
-화산중학교 전신이겠네요.
"그렇게 된 셈이죠. 그러다가 1969년12월에 당시 학교법인 화산학원(1985년 화봉학원으로 변경) 설립인가와 화산중학교 인가를 받게 됐으니까요. 직함은 처음부터 교장이었어요. 최연소 교장으로 시작해서 최장수하게 된 거예요. 그러나 말이 교장이지 뒤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어떤 때 그렇게 힘들었나요.
"1990년 후반이죠. 전국에 이농현상이 불어 닥치면서 농촌학교들이 여기저기 쓰러지는 거예요. 1980년대에 900명까지 몰려왔던 학생들이 1999년에는 54명으로 확 줄었습니다. 산간벽지 우리학교는 자연히 폐교대상 0순위였어요. 벼랑 끝이 아찔했습니다. 평생을 바쳐 가꾼 학교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난관을 어떻게 풀었죠.
"몇날 며칠 고심 끝에 초심을 생각한 겁니다. 미니버스를 직접 운전해서 산중 학생들을 불러 모으고 장학금을 줬어요. 시설투자도 오히려 늘렸습니다. 아들 4형제와 '부자(父子) 계'로 모은 자본으로 연건평 400평의 2층 건물에 기숙사(문무숙)와 강당(문무관)을 지었어요. 주위에선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누가 산골로 오겠느냐며 또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걸요. 놀랍게도 학생들이 건물 짓기도 전에 찾아왔어요. 예상이 딱 들어맞은 겁니다. 식당이 없어 집에서 밤새 준비한 음식을 자가용으로 날라 교실에서 배식도 했습니다."
-의무교육인데 기숙사가 필요했던가요.
"1985년에 최초로 의무교육 시범학교가 됐기는 해요. 그러나 기숙사를 꼭 지어야 했어요. 그래야 학생들을 감당할 수 있잖아요. 정·관계에 있는 제자와 기업인들의 도움으로 결국 제2,제3의 기숙사를 보게 됐어요. 학교 건물을 증축하고 우레탄운동장과 도서실, 식당, 공자학당도 갖추었습니다. 학생들이 더 왔어요."
-지역별 분포가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학생은 모두 348명으로, 도내 출신이 217명(62%)이고 나머지는 전국권입니다. 2년 전에는 도내 출신이 31%였거든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강원, 심지어 제주도 등 여러 지역에서 학생들이 찾고 있어요. 농촌학교도 우수학생 유치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죠."
-왜 그럴까요.
"차별화된 우리만의 영재교육 프로그램과 좋은 시설 때문입니다. 모든 교육이 학교에서 이뤄져 사교육에서 자유로워요. 정규수업이 끝나면 보충학습으로 이어져 학원이나 과외 등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주요 과목의 수준별 이동수업에다 중국어와 일본어의 제2외국어 선택교육이 진행되고요. 영재학급도 운영하고 있어요. 기숙사 또한 준비된 시설입니다. 전체 학생의 72%인 250명이 지금 기숙사 생활을 해요. 태권도와 유도 등 2단 이상을 따야 졸업하도록 만들어 놨어요. 체력 단련이 목적이죠."
-장학금 제도는 어떻습니까.
"여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1등 입학 학생은 100만원, 2등 50만원, 3등은 30만원을 주고 매학기 평균 95점 이상 성적을 올리면 10만원씩 지급합니다. 현재 한 학년에 15명 정도가 받고 있어요. 명문 고교와 대학교의 입학, 국가고시 합격생에게는 100만원을 보장해 사후관리까지 한답니다."
-인재들이 많다던데요.
"(웃음)그냥 지나갑시다."
특정인을 거론하는 건 동창회와 재학생 내부에 위화감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정·관계 인물, 기업인과 각종 대회 우수입상자를 비공식적으로 제시했다.
-교육위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교육 자치는 어떤가요.
"잘못 가고 있어요. 교육정책에 일관성이 없을 때가 많아요. 정부와 교육청의 정책이 맞아야 일을 하죠.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그래가지고 어떻게 현장에서 교육을 하겠습니까. 그 피해가 많아요."
-점수를 준다면요.
"…"(침묵)
-무상급식에 대해선 어떤 생각입니까.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시·군 단체 예산에 맞게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완주군은 전체적으로 실시되어 다행인 것 같아요."
-여전히 포부는 있는 거죠.
"우리나라와 세계를 움직이는 미래 지도자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등학교를 연계해서 설립하려 해요. 이왕이면 최첨단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교육은 최첨단사업이란 이유에서죠. 작년에 세종시에 그 부지 5만여평을 구입했어요. 제2의 꿈, 현재의 연장입니다."
그는 감청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넥타이는 제자들이 보내준 거란다. 육영사업의 열정과 제자사랑이 인터뷰 내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