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학생글

▲가슴에 얹은 심장 두 개 - 공지영 (전주근영여자고 2)

 

가슴에 심장 하나를 더 얹은 채

 

들어선 곳

 

멈춰있는 빼곡한 글자보다

 

목적 있는 얄팍한 필기보다

 

한여름, 짧은 시간에 드리워지지만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봉숭아 물처럼 손 끝부터 스며드는구나

 

더운 여름날의 아지랑이를 덮는

 

그들이 찌꺼기

 

그 찌꺼기 속에 담겨진 모든 것들이

 

그들이 되어 말해주네

 

귓불만 건드리던 것이 마음에 자리 잡고

 

이젠 눈앞을 흐릿하게 하는구나

 

아아, 누군간 글을 쓰는 것이

 

손가락으로 바위를 뜷는 것과 같다했지

 

그 고통과 마주앉아 보고

 

딱딱해진 마음의 주머니에 챙기네

 

가슴에 심장 두 개를 얹은 채

 

 

▲도움말: 테마형 현장체험학습의 여러 코스 중에서 '문학관 문학기행'을 마치고 쓴 글입니다. 전라북도의 여러 문학관을 돌아보며 작가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담아 더 큰 미래를 꿈꾸는 심장의 큰 박동이 느껴집니다. - 임진모(전주근영여자고 교사)

 

▲ 지리산 둘레길-15㎞의 행군, 나의 한계에 도전하다 - 정수진 (전주근영여자고 2)

 

 

학교에서 올해 처음으로 '테마식 현장 체험학습'을 실시했다. 말 그대로 자신이 하나의 테마를 정해서, 그 테마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여 체험학습을 하는 것이다. 갯벌 체험, 농촌 봉사 활동 등 여러 코스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내 시선을 확 잡아끄는 코스가 하나 있었다. 지리산 둘레길. 1학년, 2학년 계발활동으로 등산부에 들어갈 정도로 평소 운동(특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다. 한번 이 코스를 발견하자 다른 곳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그 코스를 선택했다.

 

체험학습 당일,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고 날씨도 습한 게 비가 오려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출발지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미 비올 것을 예상하고 우비며, 우산이며 바리바리 챙겨들고 왔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우비를 입고 출발했다. 솔직히 약간 염려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슬슬 걷다보니까 오히려 비가 오는 덕분에 햇빛이 많이 가려져서 훨씬 덜 더운 것을 깨달았다.

 

처음 코스는 흥부골 휴양림이었다. 약 1년 반 동안의 등산부 활동 덕분에 산길에 완전히 익숙해진 나는 편안한 기분으로 산길을 걸었다. 길도 험난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나무가 많아서인지 산 특유의 상쾌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산을 찾는구나, 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산을 빠져나오자 비교적 평평한 길들이 나타났다. 잔뜩 기대에 부푼 채 드디어 본격적인 둘레길 코스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둘레길은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길'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평소에 걸어 다니는 도로 같은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길이 쫙 펼쳐져 있고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길 안내 화살표는 마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을도 둘레길의 일부였던 것이다! 나름 신선한 충격에 휩싸인 채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비전 마을의 유래' 라고 써져 있는 안내판에는 비전 마을에 대한 설명이 써져 있었다. 보충 설명을 덧붙이자면,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이 비각 앞에 있다하여 마을 이름이 비전(碑前)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데 정말 재미있는 유래가 아닌가? '비전'이 이런 뜻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황산대첩비를 직접 보자, 원래 목적이었던 지리산 둘레길 체험은 잠시 잊어버리고 마치 역사 탐방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좋은 체험이 된 셈이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거세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물론 좋은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두기에는 약간 아쉬운 환경이었지만 말이다.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나 딱 하나 힘들었던 점은 예상보다 빨리 배가 고파져버린 점이었달까. 다행이도 우리들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선생님들께서는 원래 점심식사 예정지인 서림공원보다 조금 못 미친 장소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우리는 기뻐하며 도시락을 열었고, 의자에 앉아 푹 쉬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내 등산 경험에 의하면, 무언가 한창 운동을 하다가 중간에 너무 많이 쉬어버리면 오히려 더 지치는 법이다. 다시 출발할 즈음 되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얼굴에 피곤한 티가 역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밥을 먹기 전보다 더 힘들었다. 빗속을 뚫고 터덜터덜 걸어 서림공원에 도착하면서 행군은 또다시 멈추고 말았다. 결국 선생님들께서는 너무나 지친 아이들에 한해서만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보다 더 갈등이 되었다. 머리로는 애써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반절밖에 안 남았는데 한 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빗물 때문에 걸을 때마다 속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신발과 녹초가 되어버린 몸은 빨리 저 버스를 타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그냥 확 타버릴까 생각도 하다가, 그랬다간 왠지 나 자신한테 지는 것 같아서 분한 마음이 들었다. 반절밖에 안 남았다니, 까짓거 오기로라도 끝까지 걸어야겠다고 독기를 품고 버스에서 등을 돌렸다. 버스가 떠난 뒤에 보니까 버스를 타고 간 아이들은 전체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많은 아이들이 함께 걷기 위해 남아있었다. 이 친구들도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피곤함이 좀 덜해졌다.

 

서림공원을 빠져나와 운봉농협을 지나 덕산 저수지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길 자체가 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끼면서 나름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어느 정도 지나자 안경에 계속 빗물이 떨어져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탓에 신발에 물이 차고, 내가 걷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리가 날 끌고 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머릿속이 텅 빈 채 열심히 다리만 움직였다. 버스를 떠나보낸 지 딱 5분 만에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는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나, 그냥 버스 탈걸 왜 쓸데없는 오기를 부려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나' 등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걷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자 서서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만 맑았더라면 당장 사진을 찍었겠지만 비 때문에 아쉽게 그냥 지나친 풍경들도 많았다. 특히 가까스로 도착한 덕산 저수지는,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본 저수지 중에서는 가장 넓었기 때문에 내 마음까지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여기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인지, 덕산 저수지가 두 배로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과 합류해서 목적지까지 같이 걸어갔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노치마을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인 회덕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회덕마을 정자나무 쉼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를 본 순간 눈물이 날 뻔 했다. 나 자신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가깝지 않은 15km의 거리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다 걸었다니! 나는(그리고 나와 함께 걸어 온 다른 몇 십 명의 친구들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이번 체험을 계기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오늘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어떤 것이라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도움말: 테마형 현장체험학습 여러 코스 중 '지리산 둘레길 생태 탐사 및 환경정화활동'을 통해 단편적인 활동이 아닌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고 또한 앞으로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체험 학습 후기네요. 코스를 걸으며 느낀 솔직 담백한 되새김에 둘레길 여정의 표정이 그려집니다. - 임진모(전주근영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