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욕심 없이 중심 잡으려 했죠"

"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면 이 역할은 안 했겠죠. 요번 작품만큼은 무게 중심을 잡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오는 29일 개봉되는 영화 '의뢰인'에서 검사 '안민호'를 연기한 배우 박희순을 20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변호사 역을 맡은 하정우, 용의자 역의 장혁과 함께 세 축을 이루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하정우에 비해 분량이나 비중이 적은 편이다. 검사라는 제한적인 캐릭터에 비중도 상대적으로 덜하다보니 하정우에 비해 조금 묻힐 수 있는 배역이다.

 

그러나 박희순은 캐릭터의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 등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하정우와 경쟁하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실 이 작품 선택은 하정우가 한다는 게 70(전체를 100이라고 봤을 때) 정도의 영향을 줬어요. 하정우란 배우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까 또 해볼 수 있겠죠. 딱 맞부딪힐 수 있는 역할로…."

 

 

그는 애초에 그런 점을 염두고 두고 극 전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처음엔 하정우 씨가 활개를 칠 수 있도록 반대편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막판에 장혁 씨가 치고 나가게끔 해줬죠. 요번에는 튀고 싶다거나 뭔가 보여주겠다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그가 연기한 안민호 검사는 냉철하고 자신만만한 엘리트이면서도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하고 라이벌인 하정우에 대해 약간의 열등감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어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나쁜 이미지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다.

 

"자칫하면 전형적인 검사가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서 선택을 좀 망설인 게 사실이에요. 변호사와 검사의 시소싸움이 긴박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물증이 없고 정황만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극중 배심원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죠. 냉철함과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의를 지키려는 진정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어요. 도망갈 구석은 없고 그냥 정공법으로 밀어붙이는 것밖에는…"

 

이렇게 어렵고 티도 별로 안 나는 역할이지만, 그는 이번 영화가 그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줬다고 했다.

 

"저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 주연으로 작품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는 것에 젖어 있었다면 이번엔 한 발짝 물러서서 주연의 운용을 객관적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그게 지금 하고 있는 작품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그간 여러 작품에서 배우로서 다양한 모험을 했지만, 주연으로서 흥행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도 이번 작품 선택에 영향을 준 듯했다.

 

"늘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어서 시작하지만 작품에서의 모험을 즐기다보니 관객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자꾸 도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흥행에 좀 실패한게 연달아 있었는데, 운이나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고단함이나 압박감 같은 것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발 물러서서 이 역할이 조연일 수도 있지만 선택한 거죠."

 

다음에 개봉되는 영화 '노서아 가비'에서 그는 고종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험한 역할을 많이 해서 스스로도 '오지 전문 배우'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데 비하면 이번 검사 역할에 이어 '신분 상승'인 셈이다.

 

"드디어 왕이 됐어요. 하하. 이것도 새로울 것 같아서 뛰어든 작품이죠. '의뢰인'이 최초의 법정영화인 것처럼. 궁궐에 있는 왕이 아니라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던 왕이라서 현대적인 배경에서 왕의 모습이 이국적이거나 신선해 보일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매 작품 다 칭찬받을 수 없고 원하는 것만 할 수는 없죠. 하지만, 계속 비슷한 것을 고집하면 매너리즘에 빠지니까 욕을 먹더라도, 새로운 시도가 무모하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