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는 예전에 일반백성이나 하급 벼슬아치들이 자기 고을의 원(員)을 존대해 부르는 말이다. 한자로는 使道로 쓰고 '사:또'로 길게 발음한다.
종 6품 이상의 지방관리로, 오늘날 기초단체장인 시장·군수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사또의 권한은 막강했다. 지금으로 치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모두 가졌다. 막강한 권한을 갖다보니 부정도 심했다. 고전소설이나 각종 기록에는 선정을 베풀기보다 가렴주구나 탐관오리로 묘사되곤 한다. 실제로 고려나 조선시대 내내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하지만 지방행정의 중심으로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또의 행태를 적나라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린 대표적 작품이 춘향전이다. 춘향전에서 신관사또인 변학도는 탐욕스럽고 여자를 밝히는 위인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원골 성춘향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다른 지역을 마다하고 남원부사가 되어 내려온다. 소위 '신연맞이'가 그 대목이다.
신연(新延)은 도(道)나 군(郡)의 장교나 이속(吏屬)들이 새로 부임하는 사또를 그 집까지 가서 맞아오는 일이다. 그가 내려온 길과 절차는 다음과 같다.
집이 있는 서울 남산골(또는 자하골)에서 출발하는데 맵시좋은 별련(別輦·특별히 아름답게 꾸민 수레)을 타고 아전들의 우두머리인 이방과 형방, 그 밑의 통인과 급창(사또의 명령을 받아 큰 소리로 전달하는 사람), 나졸들이 호위했다. '에라, 게 들어 섰거라'하는 벽제소리를 외치며 남원으로 향한 것이다. 남대문 밖으로 내달아 이태원고개를 넘었다. 이어 경기도 충청도를 지나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 들렸다. 객사에 들어 상황을 알리고 감영에 얼른 들른뒤 길을 재촉했다.
임실의 노구바위에서 점심을 먹고 오수역에 다다르니 환영 대포가 울렸다. 악공들이 북과 장구 해금 피리를 불고 기생들도 나와 맞았다. 남원성 앞에는 각종 깃발이 나뿌꼈다. 남원에 도착하자 신관사또는 동헌에 자리잡고 앉아 식사를 한후 육방하인들의 인사를 받고 곧장 그 유명한 기생점고에 들어갔다.
이같은 광경을 지금 남원에 가면 볼 수 있다. 남원시가 가을철을 맞아 신관사또 부임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행사는 4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의 상설문화관광상품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춘향골 남원에서 전통문화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