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 "줄기차게 사랑 노래했다"

"전쟁기념관에 답사를 가 객석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제가 군사재판을 받았던 육군본부가 보이더군요. 1979년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가 스러지지 않고 꿈꾸던 공연을 연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가수 심수봉(본명 심민경.56)이 다음 달 8일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더 심수봉 심포니'란 타이틀로 공연하는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22일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람들은 내가 고통의 시간을 보낸 걸 모르고 10.26으로 장사한다고들 했다"며 "하지만 난 의도적으로 (그 사건을) 피하고 싶었고 음악인으로 살아나고 싶었다. 그렇게 이름난 가수가 아니란 걸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활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레퍼토리 전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70인조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꾸민다.

 

공연에 앞서 지난 19일 디지털 음반도 발표했다.

 

이 음반에는 심수봉이 작사, 작곡, 편곡한 재즈 왈츠풍의 '나의 신부여'와 2009년 30주년 음반에 수록했던 '너에게 내가 있잖니' 등 두곡이 수록됐다.

 

이날 '나의 신부여'를 라이브로 선보이며 눈물을 훔친 그는 "언론에서 전설이란 수식어를 달아주는데 쑥스럽다"며 "전설이란 말이 단순한 언론의 멘트가 아닌 진정성을 갖도록 앞으로 음악적인 노력을 많이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심수봉과의 일문일답.

 

 

--이번 공연의 의미를 크게 두는데.

 

▲지금껏 제대로 가수 활동을 하지 못했다. 가수로 공연한 게 최근 5년이고 영세한 공연만 했기에 이번처럼 준비되고 기획된 무대는 없었다. 내가 꿈꾸던 오케스트라와 원했던 공연을 하는 건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1년 전 세시봉 가수들이 대중음악 시장을 흔들고 사랑받는 걸 보고 중장년층을 대표하는 음악 시장이 부활하는 시점이라고 여겼다. 내 공연이 뒤를 이어 그 흐름을 가속화시키길 바란다.

 

--전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공연하는데.

 

▲나만을 위한 70인조 오케스트라와 대형 합창단이 함께한다. 평소 클래식을 좋아해 음악의 영감을 얻기도 해 내 음악에 클래식의 옷을 입힐 수 있다는 게 기쁘다. 클래식뿐 아니라 국악, 포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와 내가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도 선보인다. 내 음악 인생에서 이런 타이밍이 없었다.

 

--신곡 '나의 신부여'는 어떤 곡인가.

 

▲30여년 동안 많은 곡을 만들고 불렀지만 가장 소중하고 애착이 간다. '사랑밖에 난 몰라'가 내 인생의 주제곡일 정도로 난 줄기차게 사랑을 노래했다. 사랑을 찾기 위해 많은 고뇌를 했다. 고뇌를 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고 난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걸 알았다. '나의 신부여'는 물질, 조건의 틀에 갖힌 현대인의 사랑과 다른 아가페적인 사랑을 노래했다. 인생 마지막에 캡슐에 넣어 보관할 곡을 묻는다면 이 곡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아끼는 노래다. 11년 전 매니저 결혼식을 위해 깜짝 선물로 만들었는데 이 노래를 부를 남자 가수를 찾다가 결국 내가 부르게 됐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유독 사랑에 천착한 계기가 있나.

 

▲아버지 없이 자랐기에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가정을 갖는 게 꿈이었다. 한번 이혼하며 난 그런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여겼다. 하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랑은 소유보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지금의 내 남편을 사랑하게 됐고 가정이 아름답게 세워지게 됐다.

 

--'나의 신부여'에는 순수한 노랫말이 담겼는데 요즘 후배들의 자극적인 가사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요즘 훌륭한 후배 가수들이 많지만 자신의 노랫말에 대한 책임감은 필요한 것 같다. 가끔 새벽에 술에 찌들어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공허함을 채워줄 게 저것밖에 없나'란 생각이 든다. 특히 10대들을 향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랫말은 무척 중요하다. 후배들이 생명력있고 창의적인 가사를 쓰려면 컴퓨터 등 기계 앞에 오래 앉아있지 말고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발표곡 중 오히려 노랫말이 과잉 해석된 경우도 있었나.

 

▲'무궁화'란 곡의 방송 금지가 풀려 노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방송사 사장실에 찾아와 그 노래를 중단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연윤리위원회와 방송 심의에 통과된 곡을 못 부른 적이 있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은 이제 버렸다. 한국 정서에서 버려야 할 것 중 하나가 한(恨)이다. 한은 억울한 것이고 내가 그 억울함을 쌓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다.

 

--디지털 음반을 냈는데 향후 정규 음반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있나.

 

▲향후 곡을 더 채워 정규 음반을 낼 계획도 있다. 그중 국악과 재즈를 같이 풀어낸 곡을 시도해보고 싶다. 뉴욕 맨해튼에 간 적이 있는데 내 집안 어른인 가야금 명인 심상권 씨의 가야금 연주 음반을 들으며 우리의 소리에 매력을 느꼈다. 아티스트가 발에 채인다는 맨해튼에서 한국 음악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여러 장르를 한두곡씩 발표해 버라이어티한 음반을 만들어보고 싶다.

 

--함께 노래해보고 싶은 후배 가수가 있나.

 

▲YB의 '깃발'이 좋더라. 노랫말은 민주화운동하는 가사같지만 리듬이 강해 사람을 흥분시키더라. 윤도현 씨와 그런 음악도 해보고 싶다. 또 KBS 2TV '불후의 명곡2' 때 1등한 (씨스타의) 효린이도 정말 노래를 잘 하더라. 모든 음악은 세대가 변하면서 리듬이 바뀌고 내용이 달라진다. 후배들과 함께 가면서 새로운 음악 패턴을 만들어보고 싶다. 연기자, 성우는 공동 작업인데 가수는 단독 드리블을 해도 관계가 없는 직업이어서 화합되기 힘들다. 남북이 하나되길 염원하는 것처럼 가수들이 화합으로 갔으면 좋겠다.

 

--트로트가 뽕짝으로 폄하됐다는 생각은 안 드나.

 

▲사실 난 트로트에 맞춰 노래한 적이 없다. 내가 부르고 싶은 걸 만들고 불렀다. '단가(短歌)'란 표현을 써본 적도 있는데 아직 숙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트로트하는 후배 가수를 내가 좀 키워보고 싶다. 내가 곡을 줄 가수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