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지평선 축제 - 조상진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은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싶었다. 그 푸르름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움직임을 느낄 수 없는 채 멀고 작은 점으로 찍혀 있었다." 김제·만경평야의 망망한 풍경이다.

 

아리랑은 일제 침략부터 해방까지의 민족 수난사를 그린 수작(秀作)이다. 한반도는 물론 일본 하와이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민족 이동의 발자취를 따라 이름없이 사라져간 민초들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을 담고 있다. 그 출발점이 1904년 김제 들녘이다.

 

한 페이지를 넘겨 보자.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이 보다 더 김제 지평선을 잘 묘사한 글은 드물 것이다.

 

대동여지도를 펴낸 김정호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7번 이상 답사하면서 호남평야에 발을 디딜 때마다 넓은 벌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고 하지 않던가. 70%가 산악인 척박한 이 땅에 호남평야가 있어, 여기서 나는 곡식으로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김제는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망망한 평야를 안고 있어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으로 되어 있다.

 

이 불후의 작품을 기념해 벽골제에 건립한 '아리랑문학관'일대에서 지금 제13회 지평선축제가 열리고 있다. 1333명이 쌀 38가마로 빚은 333㎡떡 모자이크 만들기며 벽골제 쌍룡놀이, 횃불놀이, 벼고을 입석줄다리기, 지평선 연날리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 축제는 7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다.

 

1700년 전부터 '도작(稻作)문화의 1번지'를 꽃피웠던 김제. '아리랑'이 보여주듯 풍요로웠기에 일제 때는 더 수탈을 당한 현장이었다. 김제에서 나는 쌀은 인근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갔다. 이번 주말 아픔과 풍요가 공존하는 황금들녘으로 달려가 보면 어떨까.

 

/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