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칼럼] 처참한 전북현실, 팔장 낀 정치인들

이경재 (논설위원)

 

"(부산 시민들이) 힘을 모아주시면 내가 임기 중에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 나흘전 부산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역인사들에게 한 약속이다. 그러면서 "여기 청와대에서 온 사람도 있다. 돈을 쥐고 있는 박재완 (기획재정) 장관도 와 있다"며 "여러분이 심려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만큼 나도 신경 쓰겠다"고 했다.

 

'이 정부가 부산에 해준 게 뭐 있느냐'는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인데 대통령 스스로가 "임기 중에 최장 시간 지방에 머무는 날"이라고 언급할 만큼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다.

 

특정지역에 대한 이런 호의가 또 있을까. 약발이 먹힐지 어떨지, 부산 민심이 어디로 흐를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무척 다급해진 모양이다. 어찌됐건 부산이 부럽다. 상수원 확보, 부산·울산 철도복선화, 김해공항 국제선 증설, 신발산업 지원 등에 대해 "기왕에 해줄 거면 빨리 해주는 게 좋다. 시간 끌면 예산만 더 든다"고 대통령이 언급했으니 떼 놓은 당상 아닌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뺏긴 뒤 전북인사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뙤약볕 농성을 했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청와대였다. LH 후속대책이란 것을 두고도 "LH 이전 대가라는 것은 없다"며 타당한지 아닌지 용역을 통해 가리자던 정부였다. 전북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그들이 부산한테는 "섭섭해 하지 말라"며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니 너무 대조적이다. 이건 공정한 사회도 아니고 공정한 판단도 아니다.

 

대통령이 부산을 찾아 선물을 안길 즈음을 전후해 전북 도민들은 전북의 현실에 낙담해야 했다. 지역신문들은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하며 전북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북 법인소득 전국 꼴찌' '가난한 전북 실상 드러나' '집집마다 빚폭탄 안고 사는 전북' '도내 가계 대출 증가율 폭증' '전북 경제활동인구 빨간불' '호남에서 기업하기 어렵다' 등등 모두가 처참한 내용이다.

 

기사 제목만 보면 전북은 살만한 곳이 못된다. 공기업이나 개인회사로 치면 진작 구조조정됐어야 할 자치단체다. 전북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 8월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도민 의식조사'에서는 도민 절반(47.8%)이 전북을 떠나겠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상당수가 전북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떠나고 싶은 도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너무 양반들이라서 그러는 것인가. 지역발전을 책임지겠다던 정치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건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지역간 발전 격차를 뜯어보면 민심을 달래야 할 곳은 부산이 아니라 전북이다. 대통령이 선물을 주어야 할 곳도 부산이 아니라 전북이다. 전북이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를 사람 쪽수로 보는 측이 있지만 그건 옳지 못하다. 그런 논리라면 전북 푸대접은 고착될 수밖에 없고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사람의 질적인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인구가 적어도 제대로 된 인물이 나타나 시대정신을 구현하면 그만이다. 같은 논리로 어려움을 타개해 나갈 역량 있는 정치인 몇명만 있어도 전북이 이처럼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LH를 뺏기고도 등신 대접 받지는 않았을 것이고, 전북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그처럼 많지도 않을 것이다.

 

인구나 국회의원 숫자 문제가 아니다. 단체장의 리더십과 정치권 역량 등 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리더십을 지적하고 정치권을 판갈이하자는 여론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북 정치권은 부산 사례를 보고도 흥분하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져 있다.

 

/ 이경재 (논설위원)